현장과 사람들[20호] 플라스틱에 대한 단상 : 2019 아시아청년사회혁신가 국제포럼(ANYSE) 리뷰

2019-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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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에 대한 단상

: 2019 아시아청년사회혁신가 국제포럼(ANYSE) 리뷰


▲ 세션1 마무리 후 전시를 둘러보는 사람들 (c) 발전대안피다


지난 7월 2일, 서울시청 시민청에서 한겨레신문과 서울특별시, 씨닷(cdot)이 함께 주최한 ‘ANYSE 2019 플라스틱 투데이 : 플라스틱을 대하는 오늘의 아시아’가 열렸다. 피다가 발전의 문제를 TV에 나오는 지구반대편의 ‘가난한’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내 주변, 내 이웃, 내가 속한 사회의 문제로 말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 안에서, 또 주변에서 주요 화두로 떠오르는 환경문제인, 플라스틱에 대해 집중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환경과 비영리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포럼에서 떠올랐던 단상들을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보았다. 당시 강연자들의 인터뷰 내용이 담긴 한겨레21 연재물 링크*를 첨부한다. 

*ANYSE(Asia Network for Young Social Entepreneur) 아시아 청년사회혁신가 국제포럼


시민, 사회적가치에 집중하다 : 환경 소셜벤처의 가능성

 “오늘날 많은 이들이 상품가치가 아닌 사회적 가치에 집중해서 돈을 쓰기 시작했다”, 첫 세션에서 사회혁신 임팩트 투자 MYSC의 김정태 대표는 자신 있게 말했다. 소비자들이 약간의 가격 상승을 감수하더라도 사회와 환경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고 있다는 말이다. 초기 바다거북과 북극곰에 대해 외치던 이들이 결국 편리성을 쫓던 시장의 풍조를 바꿔놓는 데 성공했으며, 그만큼 환경 소셜벤처 시장이 이제는 매우 가능성있는 분야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보웨어’의 먹을 수 있는 플라스틱 포장재, 텀블러를 대여하는 카페 ‘보틀팩토리’와 같이 새로운 대안을 실험하는 이들이 많다는 사실이 매우 고무적이었다.

실제로 재활용 제품의 질이 매우 높았다. 세션 사이사이 참여 단체의 전시물품을 볼 수 있었는데, 페트병 추출 폴리에스터를 사용해서 만든 ‘플리츠마마’의 토트백, 그리고 폴리에스터 원단으로 만든 의상 등이 전시되어 있었다. 촉감과 디자인 면에서 기성품과 다를 것이 없었고, 추후 검색해보니 상품이 가진 가치를 고려한다면 충분히 지불 가능한 금액에 판매되고 있었다. 지금까지 막연히 편견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착하지만 품질은 그닥인’ 재활용과 현실의 재활용 기술은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세탁 시 미세 섬유 검출에 대한 파타고니아의 연구 등 우려지점도 있지만, 그런 부분은 추후 보완될 것이라 예상한다. 좋은 명분에서 시작해 경쟁력까지 갖춘 상품이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 페트병 추출 폴리에스터로 만든 '플리츠마마'의 숄더백 (c) 발전대안피다


플라스틱은 어느 순간부터 쓰레기가 되는가?

이번 포럼에서 인상적이었던 점은 플라스틱이 쓰레기가 되었을 때부터 새로운 재료로 바뀔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폭넓게 다루고 있었다는 부분이었다. 보통 가공완료 제품은 형태에서 원재료인 쓰레기가 연상되지 않기 때문에, 쓰레기를 만드는 이들의 책임을 무디게 한다. 하지만 세션 중간 티셔츠에 과자와 초콜릿 포장비닐 등을 형태 그대로 붙여놓은 ‘쓰레기덕질’의 전시품을 보면서 문득 나에게 플라스틱, 더 나아가 쓰레기에 대한 인식은 어떤 것인지 스스로 돌아보게 됐다. 다 쓴 물건이 내 손을 떠나는 순간 ‘쓰레기’가 되고, 내가 사용했지만 그 찌꺼기는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결국 재활용이라는 시스템에 편견을 씌웠던 건 아닌지 생각했다.

비단 필자만의 성찰지점은 아닐 것이다. 2018년 7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약 6400톤의 허위 신고 폐기물을 수출했다 적발됐던 필리핀 만다나오섬 사태는 한국 정부에서 얼마나 쓰레기 처리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지 보여줬다. 해당 기업에 대한 비난이 쏟아졌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폐기물 분류로 돈이 되지 않는다면 차라리 버리는 게 낫다’라는 결정을 내리도록 종용했던 현재의 폐기물 처리 정책이 있었다. 폐플라스틱을 비롯한 쓰레기가 혐오스러운 존재, 돈이 되지 않는 존재라는 프레임 속에 갇혀 있는 한, 처리 및 재활용에 있어 우리는 계속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멋지지 않은 방법으로서의 재사용

오늘날 고도의 산업사회에서 플라스틱 생산과 소비 사이클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고, 이번 포럼 역시 플라스틱을 재활용하기 위한 기술 혁신의 노력과 그 전략에 초점을 두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플라스틱을 아예 사용하지 않거나 그대로 다시 사용하는 선택지가, 상대적으로 기술과 동떨어진 해결책이라고 인식될 수 있다는 부분이 우려되었다. 사실 오늘날에는 텀블러나 에코백의 공급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이런 물건들조차 충분히 일회용으로 쓸 수 있는 상황이고, 이에 맞춰 에코백의 성분들이 오히려 재활용되기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페트, 빨대와 같은 플라스틱 제품은 재사용이 불가능하지만 종이, 비닐 포장재는 충분히 그대로 재사용이 가능하다. 때문에 ‘가능한 것은 다시 쓰고, 안 되는 것은 아예 쓰지 말자’ 라는 이상적이면서도 원칙적인 주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미 물은 엎질러졌으니 주워 담을 생각부터 하는 게 맞지만, 정답은 아예 쏟지 않는 것이다.

▲ 현장에서 대여해준 텀블러와 함께 (c) 발전대안피다


 한때는 인류에 엄청난 편리를 가져다 준 물질로 각광 받았지만, 이제 인류는 플라스틱에 관한 많은 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플라스틱을 잘못 처리했을 때 생기는 환경 호르몬과 유해 물질, 재활용 비율을 늘리기 위한 기존의 포장재, 색소, 이물질 문제 개선 등이 그것이다. 이런 문제에 관해 이전까지는 생태계 파괴, 경제적 손실 등 플라스틱 문제의 심각성을 드러내는 방향의 행사가 많았다면, 이번 포럼은 이 문제를 해결을 위해 뛰어든 이들의 이야기와 열정을 보는 시간이었기에 또 신선했다. 플라스틱에 대해 많이 고민해 봐야 하는 사람들이  한번쯤 포럼 기사를 찾아 읽고 위기감을 느꼈으면 했다. 더운 여름날 아침, 급하게 카페로 들어가 아이스 커피를 일회용 컵에 담아 나오며 미묘한 부채감을 느끼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 말이다.



*한겨레 연재 링크 : http://h21.hani.co.kr/arti/SERIES/301/



기사 작성 일자 : 2019-07-10(수)


필자: 김지은 피움 편집위원,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서아시아언어문명전공 / kje19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