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1호] 다시 읽는 발전권 선언

2018-01-23
조회수 11114

다시 읽는 발전권 선언
① 발전권 선언 30주년, 논의의 재출발에 서다


"발전은 포괄적인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그리고 정치적 과정으로서, 발전과 그로부터 산출되는 이익의 공정한 분배에 있어서의 자유롭고 적극적이며 의미있는 참여의 기초 위에서 전 인구와 모든 개인의 복지의 부단한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것임을 인식하면서 (중략)" 

"발전을 증진하기 위해서는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들의 수행과 증진에 대해서도 동일한 관심과 긴급한 고려가 주어져야 하며, (중략)" 

▲ 발전권 선언 로고  ⓒUN


1986년 UN총회가 채택한 '발전의 권리에 대한 UN선언(UN Declaration on the Right to Development, 이하 발전권 선언)' 서문의 내용이다. 개도국의 개발을 위해 경제적, 사회적 부문에 대규모 원조를 제공하는 한국 국제개발협력 사회에게 '발전권 선언'은 발전이 문화적, 정치적 과정까지 포괄한다는 다소 낯선 개념을 제시한다. '시민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가 발전을 위해 필요하다는 내용 역시 익숙하지 않다. 개도국 주민들의 사회, 경제적 필요를 조사해서 이를 채워주는 방식의 '개발'사업을 지속해왔던 한국 국제개발협력 사회에 '발전의 권리'를 이야기 하는 것은 낯설다.

1948년 '인권선언'이 발표된 이후 국제사회에서 발전과 인권이 만나는 중요한 순간이라는 평가를 받는 '발전권 선언'은 어떤 배경에서 제정되었을까? 그리고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또한 2016년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라는 새로운 국제적 목표와 '코리아에이드'라는 변종 이벤트성 원조 사이에 서 있는 한국 국제개발협력에 '발전권'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발전대안 피다'는 앞으로 '피움'을 통해 인권으로서의 '발전권'이 가지는 역사적 맥락과 의미 그리고 주요 특징을 짚어보고, 국제사회의 적용 상황 및 한국 국제개발협력에 주는 의미와 교훈을 밝혀보고자 한다.

'발전권 선언'이 채택되고 발전해 온 과정은 바로 인권 그리고 국제개발협력 발전의 역사이다. 1986년 UN총회에서 미국의 반대와 8개국의 기권 가운데 나온 정치적 타협의 산물로 '발전권 선언'이 탄생했다. 7년 뒤인 1993년 비엔나에서 개최된 제2차 세계인권회의는 발전권을 '기본적 권리'라 선언했고, 인권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했다.
1)  1980년대 구조조정이 휩쓸고 지나간 후, 1990년대 '인간개발(human development)'이 중요 개발담론으로 등장하고 다양한 국제회의를 통해 개발과 인권의 통합은 가속화됐다. 1994년 카이로 국제인구개발회의, 1995년 베이징 세계여성대회, 1995년 코펜하겐 사회개발정상회담에서 이러한 작업이 진행됐다.2) 

2016년, 국제사회는 발전권 선언 발표 30 주년과 동시에 새로운 발전목표인 'UN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맞이했다. 제이드 라드 알 후세인(Zeid Ra'ad Al Hussein) UN 인권고등판무관은 '지속가능발전(SDGs)을 위한 2030 아젠다'는 명백히 발전권에 기초를 두고 있음을 표명했다. 발전권 선언과 SDGs 모두 약자에 대한 구조적 제약 해결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발전권 선언의 관점과 접근법 및 내용이 SDGs의 이행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는 중요한 이슈이다.

UNDP와 같은 주요 국제기구와 노르웨이, 미국, 독일, 스웨덴, 스위스, 영국, 일본, 캐나다와 같은 공여국들은 2000년 전후로 인권과 개발의 통합을 구체화한 접근인 '인권기반접근법(Human Rights-Based Approach, HRBA)' 및 인권주류화, 인권대화, 인권사업, 간접적 방식의 인권증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인권을 개발에 접목해 원조정책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Oxfam, CARE, Action Aid 와 같은 국제개발NGO들도 '인권기반접근(HRBA)'을 사업에 반영하고 있다.
3) 

그렇다면 한국 국제개발협력은 인권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2005년 12월 바스피아(BASPIA)란 단체가 설립됐다. 두 명의 청년이 설립한 이 단체는 '권리기반접근(RBA)'을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하며 당시 한국 국제개발협력 사회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2000년대 중후반 바스피아는 각종 UN문서나 외국서적에서나 접하던 RBA를 여러 교육, 세미나, 포럼을 통해 적극적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그 당시 정부 원조기관이나 개발NGO가 RBA를 최우선적인 전략으로 채택했다는 소식은 쉽게 들려오지 않았었다. 2010년 이후 한국인권재단이 각종 인권과 개발과 관련한 외국 정책문서를 번역해 소개했고, 몇몇 연구자들이 외국도서를 번역했으며 연구서와 논문을 출간했다. 이러한 노력 때문이지 수년 전부터 몇몇 개발NGO들이 RBA의 적용 범위를 조금씩 넓혀가고 있고, 대중 행사에서 RBA를 실제사업에 적용한다는 발표들이 소개되고 있다.

한국정부가 2010년 제정한 '국제개발협력기본법'과 각종 국제개발협력 정책문서는 인권을 국제개발협력의 중요한 구성요소로 언급하고 있다. 한 예로 국제개발협력기본법은 제3조에서 "개발도상국의 빈곤감소, 여성과 아동, 장애인 인권향상 및 성평등 실현, 지속가능한 발전 및 인도주의 실현,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 추구, 협력 대상국과의 경제협력 관계 증진"을 기본정신으로 밝히고 있다. 이와 같이 여성과 아동, 장애인의 인권향상은 한국 ODA의 매우 중요한 기본정신이다. 그러나 이 내용이 실제 실현되는지는 의문이다. 2010년 국제개발협력 선진화 방안, 2015년 제2차 국제개발협력기본계획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국제개발협력에서 인권은 그저 범분야 중 하나이며, 인권을 존중한다는 그 자체가 최고 수준의 대우인 '레토릭'이 아닌지 생각된다. 한국의 무상원조전담기관인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KOICA 인권분야 전략(2013~2015)'은 주요 목표 중 하나인 'RBA제도기반마련'의 중점 프로그램으로 첫째, 국가협력전략(CPS) 및 KOICA 주요 정책/전략상 인권적 관점 반영, 둘째, KOICA 프로그램 추진체계상 인권적 관점 반영을 제시했다. 이 목표가 실행되었다면 한국 ODA에 굉장한 진보가 있는 것이다. 그러나 여러 CPS에 인권이 중요하게 반영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국 개발NGO는 어떨까? 인권을 개발사업에 적용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는 동시에, '빈곤포르노성' 홍보영상과 사진이 모금을 위해 당당하게 활용되는 현상이 여전히 목격되고 있다.

2016년 10월 25일 새로 출범하는 '발전대안 피다'는 '발전권 선언'의 정신을 존중하며, 국제개발협력을 보는 관점으로 설정했다. '발전대안 피다'는 앞으로 ‘발전권’의 관점에서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문제의식을 구체화하는 동시에 가능성을 찾아가고자 하며, 이를 ‘피움’을 통해 공유할 것이다. ‘발전대안 피다’의 발전권 논의를 시작으로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한층 더 성찰하고 나아가 성숙해지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희망한다.


기사 입력 일자: 2016-10-24


작성: 한재광 발전대안 피다 대표 / hanlight@daum.net



1) 아준 센굽타. 2010. '개발권의 정의와 실천.인권을 생각하는 지침서',양영미 역, 「인권을 생각하는 지침서」 서울:후마니타스
2) 이태주. 2012. '개발효과성과 인권기반ODA의 적용과제'. 외교정책과 ODA. 제4차 KOICA-세종 콜로키엄 발표문.
3) 이주영. 2012. 인권에기반한 개발: 국제기구 및 공여기관과 시민사회단체의 경험. RBA(인권에기반한)개발 고급과정 자료집. KOIC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