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빈곤을 보는 우리의 시선과 그 대안: 삶을 담은 사진 (1부)

2022-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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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을 보는 우리의 시선과 그 대안: 삶을 담은 사진 (1부)


발전대안 피다는 '삶이 흐르는 강 MEKONG' 전시 기간 중 전시의 취지와 전시작에 담긴 이야기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시 참여자들과 함께 짧은 토크를 나누는 사이드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12월 첫 순서로 스타트를 끊어 주신 데 이어 마지막 다섯 번째 순서도 함께해 주신 이번 전시 기획자 임종진 작가(발전대안 피다 전문위원/공감아이 대표)님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김향지 |  작가님께서는 우리가 개발도상국을 보는 시선과 그것을 담는 방식에 큰 변화가 필요하다고 굉장히 오랫동안 강조해서 말씀을 해 오시고, ‘사람이 우선인 사진’이라는 기조를 가지고 계속해서 사진 작업을 해 오셨습니다. 이번 전시회 기획도 그런 맥락을 담고 있는 작업이고요. 지난 12월에 진행했던 토크에서는 우리 사회, 그리고 특히 개발 협력 분야에서 계속 문제로 지적되어 온 소위 ‘빈곤 포르노’라는 것에 대한 대안으로 ‘삶을 담은 사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셨어요. 이 '삶을 담은 사진'이라는 개념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시겠어요?


임종진 |  삶을 이야기하는 사진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방법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주목해야 될 부분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텐데요. 빈곤 포르노라고 하는 것 자체가 어떤 빈곤의 상황, 고통의 상황이라는 것만을 이미지화시켜서 전달함으로 인해 생겨난 부정적인 현상을 총칭할 수 있는 용어라고 친다고 한다면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만 하죠.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한 이야기라는 건 빈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빈곤 너머의 또 다른 무언가를 함께 얘기하자는 것인데, 저는 그것이 ‘삶’이라고 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 삶이라는 건 전쟁이나 기아 같은 고통의 상황으로 한정지어서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그런 모습을 말하는 건 아니에요. 사실 ‘삶’이라는 말은 듣는 순간 되게 좋고, 편안하지 않나요? 물론 고단한 삶이 있죠. 그렇지만 삶이라는 건 참 소중하잖아요. 내 삶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고, 그건 이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생명체가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그래서 소위 제3세계나 개발도상국의 주민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의 하나의 단면, 즉 어려운 상황이나 빈곤에 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라 그 너머에 삶의 또 다른 여러 형태의 단상들이 있고 그것을 목도하는 것으로 저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김향지 |  발전대안 피다도 예전부터 빈곤 포르노를 극복해 보자는 캠페인도 진행했었고, 또 작년에는 저희가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지원으로 수행한 ‘활동가의 목소리로 만드는 개발협력 속 민주시민 교육’이라는 사업을 통해서 빈곤 포르노에 대해 개발협력 활동가들의 생각들을 함께 모으고 토론을 해보는 행사도 했었어요. 


당시 행사 참가자들에게 사전 질문으로 ‘기부 요청 콘텐츠를 만들 때 빈곤 포르노가 빈곤 포르노이게 되는 지점은 과연 어디라고 생각을 하는가’를 물어봤거든요. 제작의 의도에서부터 결정이 되는지, 혹은 표현 방식에서 결정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받아들이는 인식에 따라 결정이 되는 것인지 등으로 단계를 나누어서 설문을 했는데 과반수의 응답자들이 표현 방식이라고 응답을 했었어요. 작가님께서 보실 때 빈곤 포르노가 빈곤 포르노이게 되는 지점은 어디라고 생각하시나요?


임종진 |  표현 방식, 그러니까 극한의 상황을 보여주는 이미지, 그리고 그것만을 중점으로 굉장히 시각적으로 강하게 보여주는 방식을 지적하셨다는 거네요.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저는 좀 다르게 보는데, 그건 애초에 그렇게 만들려고 했으니까 그렇게 만들어진 거잖아요. 이미 의도 자체가 그러니까 그렇게 찍는 거죠.



김향지 |  의도가 그렇지 않았는데 그렇게 찍을 수는 없다는 말씀이시군요.


임종진 |  그렇죠. 그래서 저는 이 모든 것을 포괄하는, 궁극적으로는 인식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이런 콘텐츠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활동을 알리고 하고 모금액을 늘리기 위해서는 어쩔 도리 없는 목표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봐요. 어쨌든 결과 지향적일 수밖에 없으니 결국은 동정이나 연민의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로 설득을 해 오게 된 건데, 그 설득의 방식이라는 것을 선택한 지가 이미 너무 오래되었고, 그것이 반복되면서 수용자들이 보기에 빈곤 포르노인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거죠. 


이 현상에 대해서 (빈곤 포르노성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피할 수 없는 책임을 져야 해요. 지금의 표현 방식은 무조건 바뀌어야 하고요. 분명한 것은 여지까지 해 왔던 모금의 방식에서 벗어나는 과도기를 받아들여야 된다는 거예요. 어렵고 가엾고 불쌍하다는 감정을 들게 하는 시각 이미지 활용의 방식을 벗어나는 데에는 물론 굉장한 용기가 필요하죠. 모금이 줄어들 거라는 걱정도 되고, 뭘 해야 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생길 수 있죠. 이러한 과도기적인 상황을 받아들일 용기를 내고, 일단 시작을 해야 된다고 봐요. 


지금도 자성의 목소리가 나온 지도 이미 꽤 오래됐지만 여전히 신문이나 방송 등 모든 부분에 우리들이 경계하는 빈곤 포르노성 이미지들이 여전히 나오고 있고, 또한 더 정교해지고 있거든요. 이제 더 이상 변화를 늦출 수는 없는데, 앞서 말씀하셨던 단계들을 초월하는 관념과 인식의 개선이 근본적으로 이뤄져야 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어요.



김향지 |  개발도상국 현지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이 있어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실제 못 사는 데이기 때문에 못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건데, 비극적이고 비참한 상황이 그곳의 현실인데 그것을 애써서 포장하고 아름답게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 기만 아니냐는 거죠.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뭐가 잘못 것이냐는 의견도 있는데, 지난번 토크에서 작가님께서 ‘무엇이 있는 그대로냐에 대한 생각을 해 보는 것도 필요하다’는 말씀을 해 주셨잖아요. 그런 관점에서 이런 의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임종진 |  우선 이런 어렵고 고통스러운 현실이라는 것은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사실에 입각한 현상인 거죠. 어떤 긴급한 재난 상황이나 전쟁 상황, 기아의 문제. 이런 것은 분명히 지금 벌어진 현상이에요. 그건 사실이고 부정할 수가 없죠. 


다만 그런 관점으로만 바라봤을 때 문제는 이런 거예요. 수전 손탁의 말을 빌자면, 고통이 만연해 있는 상황에서 살아가는 것과 그 고통이 만연한 상황을 이미지화된 상황을 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죠. 어느 지역의 비극적인 현상이라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 사실을 그것만 가지고 얘기하면 그곳에 실제 처해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비극을 가진 사람들이라고만 인식하게 만들게 돼요. 내가 만약에 A라는 공간에서 벌어진 비극적 상황을 현장에서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현지의 당사자들이 비극이라는 상황 말고도 보여줄 수 있는 굉장히 많은 것들을 보게 되거든요. 그러나 그곳에 있지 않은 다른 수용자는 비극이라는 상황만을 가지고 재단되고 시각화된 이미지만을 보게 되면 이 상황 너머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상상할 수가 없어요. 


제가 지난번에도 ‘상상력’이라는 것을 말씀드렸는데, 우리가 타인의 삶을 존중하는 여러 방법 중 하나가 그 사람의 삶을 상상하는 거라고 저는 생각해요. 누군가의 삶을 상상할 수 있다는 건 그 사람의 삶을 구성하는 굉장히 다양한 것들, 그 한 사람이 하나의 우주라는 것까지도 받아들이는 행위라고 생각해요. 상상이라는 게 대단하고 어려운 게 아니에요. 가령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어떤 사람이 되게 피곤한 모습으로 기대서 졸고 있다면, 이 사람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을까, 어떠한 삶과 어떤 육체적·정신적 피로를 겪었을까 상상하는 거죠. 다른 지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 예를 들어 에티오피아라고 하면 그 나라의 젊은 연인들은 데이트를 어떻게 할까, 어디서 어떤 문화 생활을 즐길까,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어떻게 수업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는 숙제도 하겠지만 또 놀 때는 무엇을 하고 놀까, 이런 것들을 상상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해요.


비극이라는 요소가 사실이지만 그것만 가지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얘기하는 것이 과연 그 당사자의 입장에서 과연 온당할까요. 그 비극적인 장면 너머를 상상할 수 있을 때 그 당사자들의 존재성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거죠. 


우리가 누군가의 삶에 함께한다고 말할 때 그 사람이 처해져 있는 여러 형태의 불편부당함 또는 온전하지 못한 상황의 개선만을 위해 접근하는 것과, 그 사람을 하나의 우주적 삶으로 여겨서 접근할 것이냐는 너무 다른 것 같아요. 비극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이 있나요. 누구나 다 아프죠. 그리고 또 누구나 다 기쁘고 내 삶을 행복하게 또는 성공적으로 만들어가고 싶은 그런 긍정적인 욕망을 가지고 있어요. 설령 현재의 상황이 그런 사회적인 시선, 계급화된 시선에서 봤을 때 일정 정도의 부나 지위를 갖고 있지 못하다 하더라도 내려다보거나 하등하다고 바라볼 수 있는 건 아니니까요. 결과적으로는 비극적인 상황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가 대안의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김향지 |  어쨌거나 다른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개입을 하는 활동들을 하면서 그 사람에 대한 진정으로 존중하는 태도를 갖고 있다면 사실 결코 나올 수가 없는 콘텐츠들이 지금 나오고 있는 것이네요.


임종진 |  그렇죠. 제가 ‘인식의 문제’라고 하는 게 인식 개선이라는 좀 좁은 의미의 것은 아니고요. 이 사람이 나한테 어떤 사람이냐는 인식을 말하는 거예요. 어느 지역의 어느 사람을 봤을 때 ‘이 사람은 되게 상황이 안 좋고 그러니까 내가 도와줘야 돼’라고 하는 나의 일방적인 시혜의 대상으로 내가 생각하느냐, 아니면 그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 참 귀하다’ 이런 식의 마음을 가지고 다가가느냐, 이건 너무도 다르다는 거죠. 그래서 그런 관념의 점진적인 전환에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는 거고요. 누군가가 얼마나 가난한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에 대한 얘기가 아니라 얼마나 귀한가 하는 생각의 전환을 통해서 콘텐츠를 제작해 가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김향지 |  콘텐츠를 만드는 입장에서도 변화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지만, 그런 변화된 태도를 가지고 만든 콘텐츠가 그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도 똑같이 그 안에 담겨 있는 이들의 입체적인 삶에 대한 상상력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어야 할 텐데요.


임종진 |  전달이 되죠. 기본적으로 사진이라는 건 그래요. 지금은 스마트폰으로 지금 어느 누구나 사진을 잘 찍고 즐기잖아요. 어떤 사람의 스마트폰을 열어 보면 그 사람이 들어가 있어요. 그 사람이 가장 좋아하고 사랑하고 아끼는 모든 것이 모든 것이 스마트폰 사진첩 안에 다 있거든요. 어떤 사람은 꽃을 좋아하지만 어떤 사람은 꽃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어요. 꽃을 좋아하는 사람은 앨범에 꽃이 굉장히 많을 거고요. 꽃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꽃이 아니라 다른 게 있겠죠. 내가 누군가를 좋아한다면 기본적으로 그 상대의 사진이 엄청나게 많아요. 내 마음이 가고 있는 대상 앞에 섰을 때, 그리고 내가 들뜨거나 기쁘다는 감정을 느낄 때 우리는 사진을 찍는 수고로움을 전혀 마다하지 않거든요. 그러니까 사진이라는 건 그렇게 마음에 들어가 있는 거예요. 


이걸 좀 더 확장해서 생각하면, 내가 한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사진은 전혀 다르게 찍힌다는 거예요. 똑같은 모습이어도요. 예를 들어서 기아 문제를 생각해 보면, 굶주림에 치어서 어려워하고 있는 어떤 마을에 가서 그런 힘든 모습들을 보면 굉장히 절절해지고 마음이 아프죠. 그런데 그런 비극적인 상황만을 생각하고 바라보면 비극적인 상황을 극대화시켜서 찍게 될 수밖에 없어요. 사람은 사실 그래요.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귀하다’는 생각을 하면 다른 것들을 보게 돼요. 똑같은 상황인데도요. 


전문 사진가가 찍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에요. 자기가 좋아서 찍는 스마트폰 속의 사진들을 생각해 보면 어려운 얘기가 아닌 걸 아실 거예요. 내가 어떤 한 사람을 어떻게 인식하는가, 아니면 인식이라는 멋진 말 말고 그냥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에 따라 사진이 바뀐다는 거죠. 아까도 기획 의도부터 그러니까 그것밖에 못 찍는 거라고 했잖아요. 그렇게 찍어야 하는 걸로 알고 가니까요. 그런데 그것을 처음부터 변화시키고 바꿔내는 내부적인 변화의 시도들이 모여서 우리가 어디 가서 한 사람의 가난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한 사람의 귀한 우주를 만나는 것이라고 하는 이런 생각의 전환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는 굉장히 큰 모태가 되는 거죠. 사진을 찍을 때 표현 방식이 단순하게 갑자기 예쁘고 환한 얼굴 표정을 보여 주는 식으로 바뀐다고 해서 우리한테 인이 박혀버린 포르노화된 인식이 바뀌는 게 아니에요.


* 다음 피움에서 2부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진행/정리: 김향지

발전대안 피다 애드보커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