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발전 대안 세미나 #1] 국제개발협력을 통해 비춰 보는 우리의 발전상(像)

2022-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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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개발협력을 통해 비춰 보는 우리의 발전상(像)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 1회차 강의 리뷰



ODA에 대한 싫증과 대안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청년을 위해, 기술적 교육을 벗어나서 개발협력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장이 열렸다. 바로 발전대안 피다가 주최하는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이다. KOICA와 KAIDEC의 ODA 학술활동 지원 사업으로 선정된 본 세미나 프로그램은 지난 7월 13일 첫 강의를 시작으로 5주 동안 매주 수요일 저녁마다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번 세미나는 많은 국제개발협력 활동가의 관심을 받았다. 세미나의 시리즈의 사전 신청자는 170여 명이었으며, 1강의 최대 동시 접속자는 1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참여 열기가 뜨거웠다.


본 세미나 시리즈는 발전의 개념을 단순화하기보다는 다양한 사람들이 다양한 장소와 맥락에서 희망하는 발전의 의미들에 대해 생각해보기 위한 시간으로 문을 열었다. 첫 번째 강의의 강사로는 피다의 운영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는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의 장대업 교수가 초빙되었다. 장대업 교수는 한국 발전, 노동, 이주, 정치경제학의 주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왔다. 


다양한 발전상을 이야기하자면 피다의 2018년 프로젝트인 ‘함께 찾아가는 발전상’을 함께 봐야 한다. 피다는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캄보디아에서 직접 주민을 만나면서 그들이 생각하는 발전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이를 ‘발전을 그리는 사람들’이라는 다큐멘터리로 엮었다. 이때 장대업 교수도 피다의 운영위원으로서 캄보디아에 동행해 다큐멘터리 작업에 함께했다. 장대업 교수는 이 프로젝트를 개발도상국에서 발전을 배워보자는 시도였다고 설명했다. 개발도상국 시민들은 발전을 경험하지 못했기에 발전을 잘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개발의 행위는 선진국의 발전 경험을 전파하는 것에 그치게 된다. 하지만 개발도상국의 시민들이 희망하는 발전을 곱씹어 봄으로써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발전과 다른 발전을 배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획이었던 것이다. 


장대업 교수는 이어 발전의 단수화 과정을 설명함으로써 개발도상국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다양한 발전의 의미를 덧붙였다. ‘선진국’이란 발전을 경제 성장으로 정의하며 이것이 우리 모두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집단적·사회적 신념을 견고화함으로써 발전의 개념을 하나로 수렴시킨 결과물이다. 이러한 종류의 발전이 전파되면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은 개발을 위한 신탁관계를 형성했고, 이것이 국제개발협력이 되었다. 하지만 “누가 더 풍부한 발전을 말할 수 있는가”, 그리고 “누가 더 지속가능한가”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해 단연코 승자는 단수화되지 않은 개발도상국의 발전이다. 



그렇다면 캄보디아가 발전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면 어떤 발전을 이루고자 할까? 장대업 교수가 캄보디아에서 직접 만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발전을 원했다. 


●  발전의 내용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  사람이 발전의 목적이 될 수 있어야 한다.

●  평화로운 발전이어야 하고 그 과정에서 사회 구성원들이 건강할 수 있어야 한다. 

●  상호 존중되어야 한다. 지역 개발이건 국제 개발이건 상호 존중의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  발전의 결과물들은 사람들이 기본적인 공공재를 누릴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이런 발전의 조건들을 표현하는 두 가지 키워드가 있었는데, 바로 공동체와 터전이었다. 발전은, 공동체를 유지함과 동시에 살림으로서의 경제의 근거지인 터전을 따듯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캄보디아에서 체험한 발전은 녹록지 않았다. 현대적 발전 경험을 살펴보면 상당한 부침이 있었다. 한때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큰 크메르 제국이었지만 캄보디아 왕국으로 넘어오면서 양쪽에 위치한 태국과 베트남으로부터 일종의 핍박을 받는 시기가 되었고 결국엔 그것이 식민주의로 넘어가게 되는 계기가 된다. 이후 1863년 프랑스의 식민지가 되고 1953년 다시 해방되지만 1·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전쟁의 영향 속에서 크메르 루주의 내전과 론놀 장군의 쿠데타가 일어난다. 그리고 이때 악명 높은 킬링필드라는 학살 사건도 발생했다. 이후 1991년 평화협정이 완성되고 곧이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도입해 성장을 도모한다. 실제로 캄보디아는 현재까지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이어오고 있지만, 이 과정에서 농지를 빼앗긴 농민들은 도시로 이주해 노동자가 되고, 열악한 환경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 정치 권력은 민주주의가 아닌 권위주의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사실 발전의 시초, 그 창세기를 살펴보면 인클로저 운동이다. 이는 일종의 공동체와 터전을 파괴하는 과정이었다. 마르크스, 로자 룩셈버그, 폴라니 등의 19세기 학자들에 의해 현대적 발전 개념이 규정되었는데, 이를 통해 발전은 자연적이고 순환적인 변화의 의미를 가진 단어에서 단선적이고 목표가 있는 진보로 의미가 변화하였다. 특히 산업자본주의에 들어서면서 화폐 단위로 측정되는 물질적 부와 생산 역량으로 진보의 기준을 확립했으며, 산업화와 생산력의 발전으로서 내재적 발전 개념을 확립했다. 이렇게 생겨난 발전정설은 아담스미스, 프리드릭 리스트, 칼 마르크스 등의 학자를 거치면서 개발의 신탁관계의 개념까지 확장된다. 개발의 대상과 주체를 구분하고 발전의 대행을 수행하는 것이다. 이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제3세계에 대한 개입 프로젝트에서 분명하게 드러났다. 유럽의 식민주의와 팍스 아메리카나에 의해 세계화된 발전정설과 신탁개발관계는 다양한 개념과 담론을 통해서 한국에 도입되었고, 발전정설의 기틀을 유지해왔다. 즉 우리나라는 일방적인 발전정설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다. 


장대업 교수는 캄보디아의 두 곳에서 만난 주민의 이야기를 소개했다. 첫 번째는 벙꺽 호수에서 삶을 살아가던 사람들의 이야기였다. 벙꺽 호수는 프놈펜의 중심에 있는, 크기로는 50헥타르의 자연 호수이다. 이 벙꺽 호수를 둘러싸고 4,250여 가구의 생활 터전이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토지 문서 없이 살고 있었다. 2001년 이후 개정된 토지법에 따라 토지의 소유권을 인정받기를 기대했지만, 2007년 정부는 토지 소유권 인정 대신, 슈카쿠사라는 회사에 호수 지역을 리스하고 호수를 메워 빌라와 쇼핑센터를 건설할 것이라는 계획을 세웠다. 꼼짝없이 생활 터전에서 쫓겨나게 된 벙꺽 호수 주민들은 정부의 부당한 결정에 대항하였고, 그 중심에 있던 인물이 “벙꺽 13인과 텝바니”였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캄보디아는 가난한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개발이 아닌 살만한 사람을 가난하게 만드는 개발을 한다. 캄보디아에서의 개발은 가난한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 따라서 그들은 기본적인 공공재를 공평하게 얻을 수 있는 환경을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해 장대업 교수는 캄보디아 사회에 돈의 힘이 만연하지만, 주민들은 공동체가 살아있는 심장의 힘이 그리는 발전을 꿈꾼다고 설명했다. 


두 번째 이야기는 댐 건설로 발전을 잃어버린 라타나끼리의 사례였다. 바탐방에서 라타나끼리로 가는 길목에는 메콩강이 가로지르면서 여러 갈래의 강이 메콩강으로 흘러들어가는 곳이 있다. 이곳은 프랑스령 인도차이나로 통합된 이후 고무농장 플렌테이션이 왕성하다. 한편 라오스, 베트남, 캄보디아를 관통하는 3개의 강에 따라 현재 42개의 댐이 건설되거나 계획되고 있을 정도로 난개발이 심각하다. 그 중 하나는 로워 세산 댐 2(Lower Sesan Dam 2)다. 중국의 일대일로 사업으로 만들어진 이 댐은 두 개의 다른 시선을 한 번에 보여준다. 댐의 준공식에서 댐은 캄보디아의 전력산업 발전의 신기원으로 소개되었지만, 정작 이 지역의 주민들은 강이 없어지고 자신들의 삶이 어려워졌음을 토로한다. 장대업 교수는 여전히 흐르고 있는 강이지만 왜 주민들은 강이 없어졌다고 하는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전력을 생산하는 강”과 “삶의 터전으로서의 강”이 다름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주민들에게 강은 주요 수입원인 물고기를 잡는, 전통과 문화의 중심이자 공통체에게 영적인 안녕을 주는 삶의 터전이며, 강이 사라졌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지켜온 발전의 지리적, 사회적 표현인 것이다. 


강의의 후반부에 이르러 장대업 교수는 국제개발협력이 추구하는 발전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지난 2018년, 라오스에서 세피안-세남노이 댐 프로젝트의 일부로 건설 중이던 보조댐 D가 완공 직전 붕괴되었다. 이로 인해 이재민만 6천여 명이 발생하고 49명이 사망했다. 당시 사업을 진행했던 SK 건설과 EDCF를 포함한 한국의 개발자들은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로 일관했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될 당시 SK 건설사의 홈페이지에 올라왔던 자축사를 참고하면 라타나끼리에서의 강을 바라보는 시선 중 “전력을 생산하는 강”을 재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해당 사업으로 인해 주민들이 겪게 될 일과 목적으로서의 사람, 건강, 상호존중, 공공재 등은 이 발전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에 한국 사회는 국제개발이라는 미명으로 남의 터전과 공동체를 부수고 있는 것은 아닐지, 강을 단순히 물의 양과 발전량으로 측정하는 우리가 과연 모든 이들이 소중한 존재임을 깨닫게 하는 발전을 수행할 있는가를 스스로 질문할 때임을 강조하면서 강의를 마쳤다. 


●  저개발은 개발도상국 사람들의 문제인가?

●  개발도상국에서 발전을 배운다는 것은 무엇인가?

●  발전의 내용을 단일화하고 이를 개발을 통해 추구하는 것은 정당한가?

●  “국제개발협력은 자신의 발전의 거울”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어지는 질의응답과 토론 시간에서는 아래의 다섯 개의 질문을 중심으로 고민을 나누었다. 

이 질문들에 대해 장대업 교수와 참여자들은 무엇보다 우리가 개발을 하는 데에 있어서 일방적인 강요를 하지 않기 위한 충분한 성찰이 필요함을 공감했다. 특히 장대업 교수는 “국제개발협력은 자신의 발전의 거울”이라는 말의 의미를 찾는 질문을 통해 한국 사회가 발전해 온 성과 중심의 방법을 국제개발협력에서 되풀이하고 있지만 한국의 엘리트들은 이를 성찰하는 것이 부족함을 지적했다. 이뿐만 아니라 강의에서 다 다루지 못한 깊은 이야기와 평소 가지고 있던 생각을 공유하기도 했다. 길을 잃은 것 같은 우리이지만 이는 우리가 성찰을 하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며, ‘개발’이라는 단어를 지양하고자 국제개발협력 대신 국제협력이라는 용어를 사용할 것을 고민하는 모습을 통해 보다 상호적인 관계에서 현장을 마주하고자 하는 활동가들이 함께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번 세미나는 앞으로 있을 국제개발협력의 고민을 풀어나가기 위한 첫 단추였다. 7월 20일에 진행된 두 번째 강의에서는 발전대안 피다의 강하니 사무국장이 대안담론과 탈식민지주의를 다뤘으며, 27일에 진행된 세 번째 강의에서는 발전대안 피다 운영위원인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 김태균 교수가 한국 비판국제개발론을 이야기했다. 한편 8월 3일에는 발전대안 피다의 한재광 대표가 시민사회와 국제개발협력을 주제로, 8월 10일에는 YMCA 동티모르 현장 활동가로 오래 일했던 발전대안 피다 양동화 운영위원이 국제개발협력의 현장화라는 주제로 마지막 세미나를 진행할 예정이다. 



글쓴이: 피움 기자단 3기

문소연 (msy13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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