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자로서 한국 개발협력 시민사회의 과제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 4회차 강의 리뷰
지난 8월 3일, 발전대안 피다의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의 네 번째 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3개의 강의에 이어 이번 강의에서는 개발 NGO를 심도 깊게 이해하고자 했다. 이에 발전대안 피다의 한재광 대표의 강의로 “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어떤 발전을 추구하는가?”를 주제로 국제개발협력의 중요한 주체로서의 시민사회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그리고 이를 위해 알아야할 이슈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재광 대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질문으로 강의를 열며, 대안자로서의 시민사회의 역할과 성격을 고민해볼 것을 제안하였다.
질문 1: 개발협력에서 시민사회는 어떤 존재인가? 질문 2: 시민사회는 개발협력에서 어떤 대안적 접근을 추구하는가? 질문 3: 한국 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어떤 성격의 대안자인가? |
1. 시민사회
시민사회의 역사의 시작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인들은 공적인 미덕으로서의 법이 지배하는 사회이자, 능동적인 시민이 해당 사회의 제도와 정책을 형성하는 '정치사회'를 시민사회로 정의했다. 이후 중세시대와 르네상스를 시대를 지나 19세기 중반까지 시민사회는 법에 의한 지배, 야만성 대신 문명성이 지배하는 정치가 이루어지는 정치 체제와 법의 보호 아래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통해 전제적인 권력이 통제되는 국가와 동일한 의미를 가졌다. 1·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의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로 인해 잠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시민사회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1970년대 중반 서유럽에서 1970년대 중반 서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돌파구로 등장하면서였다. 이는 1980년대 중반의 중‧동부 유럽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및 라틴아메리카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대항 운동과 연계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었고, 과거의 시민사회가 복원되면서 시민사회와 개발이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991년의 소련 붕괴 이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체제 전환국 안정과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 및 정부, 민간, 시민사회 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가운데 시민사회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2. 개발협력에서의 시민사회
개발협력분야에서의 NGO는 크게 세 가지 역할이 있다. 우선 학교를 짓고 소득 증대 사업을 실행하는 등의 실행자로서의 역할이 있으며, 정책 변화를 추구하는 촉매제의 역할,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파트너십으로 사업을 하는 파트너의 역할로 구분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급진주의는 서로 다른 시각으로 개발협력 NGO의 역할을 설명한다. 먼저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학자인 토크빌은 시민사회의 역할을 국가가 시민의 자유 침해를 막아 주는 방파제로 소개한다. 국가와 시장 사이의 균형자로서의 시민사회 역할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입장은 정부와 공여자들에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며, 민주적 가치가 내세워지는 장소로서 규범적 관점에서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
한편 급진적 시각에서는 사회는 헤게모니를 위한 권력 투쟁의 장이라는 시각을 바탕으로 시민사회는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시민사회는 정치적이며, 시민사회와 국가 간의 불분한 경계에 기반한 협상과 갈등이 그 존재의 기본적인 성격으로 설명된다. 시민사회라는 영역은 민주적 가치가 양성되는 곳이 아닌 국가에 대한 독립적 저항의 지점이라는 시각을 가진다. 따라서 사회에서 정의되는 시민의 개념에 따라 계급과 젠더의 제약이 발생하며,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긴장, 그리고 시민사회 자체 내에 존재하는 긴장을 설명한다.
개발 이론에 따라 NGO의 성격과 역할을 다르게 이해하기도 한다. 개발 이론에서 NGO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1993년에 발표된 브렛의 제도주의 이론은 구조적 관계의 향상과 경제적 인센티브만이 개발을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NGO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정부나 기업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2004년에 발표된 삭스의 신자유주의 이론은 세계화가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의 핵심적인 열쇠이며 이를 위해 NGO는 민주화의 유연한 중재자이자 비용 대비 효과성 있는 민간 서비스 공급자로 설명한다. 한편 풀뿌리 시각, 젠더 평등, 역량 강화 등의 지속가능하고 형평성 있는 개발을 위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강조했던 클락의 1991년 개발이론에서도 NGO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NGO가 빈민층과 가깝다는 점에서 그리고 상의하달식 주류의 정통 개발론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핵심적 행위자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NGO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1995년에 발표된 에스코바의 탈개발 이론에서는 개발이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NGO는 지역의 문화와 경제를 파괴한 근대화의 중재자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NGO 발전의 4세대론을 통해서 NGO의 역할을 이해할 수도 있다. 1세대 NGO는 즉각적인 서비스를 위해 개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2세대로 발전하면 프로젝트 관리를 통해 소규모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적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3세대로 나아가면 지속가능한 시스템과 정책 개선을 위해 장기간 지역과 국가단위로 촉매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마지막 4세대에 이르면 모든 인류를 위한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무한히 장기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한편 한국의 NGO는 1세대에서 3세대를 아우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한재광 대표는 개발협력에서의 시민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을 설명함에 이어 주요 개발협력 정책 이슈와 시민사회와의 연결된 지점과 활동가로서 성찰해야 할 토픽을 일곱 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했다.
(1) 굿거버넌스 1990년대에 등장한 '굿거번너스' 정책 어젠다는 시민사회에 관한 사고방식을 개발 정책의 주류로 가져왔다. 시민사회는 시민적 책임과 공공선의 원천이자 조직화된 시민들이 공공재에 기여할 수 있는 장소이다. 강력한 시민사회는 효율적인 정부를 수립하도록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시장경제, 정부, 시민사회 간에 선순환구조를 가정한다. 굿거버넌스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정부의 기능적 수행자로서의 시민사회를 제안한다.
(2) 신자유주의 1980년대 신자유주의 등장 이후 서구 공여국에서 개발 NGO가 민영화의 혜택을 보았다. 정부공여 기관의 아웃소싱 파트너로 개발 NGO가 등장한 것이다. 개발협력에서의 시민사회는 정부의 통치성(governmentality)에 있어 ‘파트너십’이라는 명분하에서 정부 정책의 좋은 이행자로 자리매김했다.
(3) 안보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후 국가의 정책과 개발 NGO 지원이 연계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재건 과정에서의 국가 안보 정책과 개발협력 정책의 연계 및 개발 NGO 재건 활동 연계 가능성이 있다.
(4) 원조 효과성 정책 담론 2005년 원조 효과성을 위한 파리 선언 이후 공여국 원조 정책과 개발 NGO 지원 정책 간 연계(alignment), 원조 공여 기관과의 조화(harmonization) 추진 및 적용 완화와 유지 공존이 강조되었다. 원조 효과성 적용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 및 이에 대한 CSO 본연의 ‘변혁적 기능’에 관심을 잃게 한다는 우려가 있다.
(5) 개발도상국의 시민사회 활성화 지원 1950년 말부터 북반구 시민사회의 역할이 근대화론적 접근에 대한 성찰의 결과로 직접 수행자에서 개발도상국 현지 시민사회에 대한 지원자로 전환되었다. 개발도상국 시민사회에 대한 지원에 있어 궁극적으로 활성화하고 싶은 시민사회는 ‘어떤’ 시민사회인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존재한다.
(6) 포퓰리즘/권위주의 시대의 재등장 공여국 내 포퓰리즘 운동과 정당 부상은 개발 CSO에 중요한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공여국 개발 CSO를 통한 또는 현지 CSO의 직접 지원과 관련해 개발도상국 ‘시민사회 영역 축소’는 여러 행정적 제약 사항들이 추가 및 강화되어 CSO 활동에 부담으로 등장하고 있다.
(7)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의 두 가지 유형 정부와 시민사회가 맺는 관계는 시민사회를 서비스 제공자로 인식하는 앵글로색슨형과 CSO의 서비스 제공 역할뿐만 아니라 감시 기능도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형이 있다. 이 두 가지의 관계 맺기 형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한 국가에서 유형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
3. 대안자로서의 개발협력 시민사회
우선 ‘스몰 d (development)’와 ‘빅 D (Development)’의 개발 과정을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몰 d’는 보편화된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개발을 의미하며, 지식의 구축, 기술변화, 부의 축적 등 인류의 향상이라는 철학적 측면에서 해석된다. ‘빅 D’는 정치적 개입으로서 개발 자본주의와 산업기술의 등장과 함께 야기된 사회적 대변혁을 관리하기 위한 정부정책, 산업화 자체와 산업화로 인해 혼란스러운 사회적 난맥상의 관리로 해석된다. 혹은 기술변화와 계급형성에 따른 혼란상태를 바로 잡기 위한 사회적 개입이거나 사회적 변혁을 경험한 시민들을 관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빅 D’는 사회변화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개선 혹은 ‘돌봄(care)’로서의 개발을 의미한다.
개발NGO는 사업 기획, 소액 대출, 서비스 제공 등 대안적 방법을 통해 ‘빅 D’와 ‘개입’의 대안자로서 활동을 해 왔다. 이는 대안에 대한 개량주의적 개념으로, 원조 산업 체계 내에서 NGO의 위치는 대안이 구성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왔다. 하지만 개발 NGO들이 시스템적 변화보다 쉽게 개입의 대안적 형식을 채택해 온 것에 대한 실망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은 ‘스몰 d’의 측면에서 한 사회 내에서 경제, 정치,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는 대안적 방법들을 강조하는데, 부분적이고 개량적인 특정한 개입보다는 급진적이고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4. 대안자로서의 한국 개발협력 시민사회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한국 전쟁 당시 선교 단체를 중심으로 유입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승한 사회복지 단체는 국제 사업의 연장자로서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어 위탁 사업 수행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해 왔으며,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 NGO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의 형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95년의 KOICA와의 파트너십을 시작으로 한다. 2017년에는 OECD DAC 동료심사 결과보고서의 ‘규범적 틀’ 작성 권고를 계기로 2018년 정부·시민사회 공동 작업 후 2019년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국제개발협력 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기본 정책’을 채택한다. 이후 최근 2021년에 들어서는 31개 이행 과제 채택 및 정부-시민사회 공동으로 모니터링 추진이 이뤄지고 있으며, 정부와 시민사회 관계 정립의 제도화가 OECD DAC에 의해 결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시민사회 관계가 ‘파트너십’이란 이름으로 ‘지원 제도’에만 국한될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정책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요구된다.
한편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과제로서는 사회적 측면에 대한 사업에 비해 공공행정 및 시민사회, 분쟁, 평화, 치안 등 정부의 책무성을 요구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정치적 측면은 아직 부족한 모습과 같이 수행 사업에서의 분야적 편중이 두드러지는 점, 한국의 개발협력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주체 확인에 대한 필요, 노동 문제에 대한 논의 활성화 필요, 최고 리더십으로 전직 기업인, 공무원이 부임하는 현상에 대한 진단 필요의 이슈가 있음을 확인했다.
한재광 대표는 대안자로서의 한국 개발협력 시민사회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서 이번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의 이후 이어지는 질의응답 및 토론 시간에서는 강의의 시작점에 던져진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강의를 들으면서 갖게 된 질문들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한국의 개발협력 시민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 어떤 리더가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아직은 미흡한 국제사회의 담론에 참여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의 중요성이 역설되었다. 현재로서는 정부와의 연계성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개인 후원자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한국의 개발협력 시민사회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이를 통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짧았던 한국의 시민사회가 성숙해 가고 시민사회에 대한 인식이 개선됨에 따라 개발협력 NGO가 서비스 제공자뿐만 아니라 촉매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나누었다.
지난 7월 13일부터 시작되었던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은 8월 10일의 5번째 강의로 마무리된다. 대안적 개발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많은 활동가들의 기억과 마음에 남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글쓴이: 피움 기자단 3기
문소연(msy133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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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자로서 한국 개발협력 시민사회의 과제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 4회차 강의 리뷰
지난 8월 3일, 발전대안 피다의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의 네 번째 강의가 온라인으로 진행되었다. 지난 3개의 강의에 이어 이번 강의에서는 개발 NGO를 심도 깊게 이해하고자 했다. 이에 발전대안 피다의 한재광 대표의 강의로 “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어떤 발전을 추구하는가?”를 주제로 국제개발협력의 중요한 주체로서의 시민사회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지, 그리고 이를 위해 알아야할 이슈들을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재광 대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질문으로 강의를 열며, 대안자로서의 시민사회의 역할과 성격을 고민해볼 것을 제안하였다.
질문 1: 개발협력에서 시민사회는 어떤 존재인가?
질문 2: 시민사회는 개발협력에서 어떤 대안적 접근을 추구하는가?
질문 3: 한국 개발협력 시민사회는 어떤 성격의 대안자인가?
1. 시민사회
시민사회의 역사의 시작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로마인들은 공적인 미덕으로서의 법이 지배하는 사회이자, 능동적인 시민이 해당 사회의 제도와 정책을 형성하는 '정치사회'를 시민사회로 정의했다. 이후 중세시대와 르네상스를 시대를 지나 19세기 중반까지 시민사회는 법에 의한 지배, 야만성 대신 문명성이 지배하는 정치가 이루어지는 정치 체제와 법의 보호 아래에서 자유로운 시민들의 정치 참여를 통해 전제적인 권력이 통제되는 국가와 동일한 의미를 가졌다. 1·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의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로 인해 잠시 관심을 받지 못했던 시민사회가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1970년대 중반 서유럽에서 1970년대 중반 서유럽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위기'에 대한 돌파구로 등장하면서였다. 이는 1980년대 중반의 중‧동부 유럽의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 및 라틴아메리카의 권위주의 정권에 대한 대항 운동과 연계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었고, 과거의 시민사회가 복원되면서 시민사회와 개발이 연결되는 계기가 되었다. 특히 1991년의 소련 붕괴 이후 동유럽과 중앙아시아 국가들의 체제 전환국 안정과 민주주의 증진을 위한 프로젝트 및 정부, 민간, 시민사회 간의 협력을 강조하는 가운데 시민사회가 다시 등장하게 된다.
2. 개발협력에서의 시민사회
개발협력분야에서의 NGO는 크게 세 가지 역할이 있다. 우선 학교를 짓고 소득 증대 사업을 실행하는 등의 실행자로서의 역할이 있으며, 정책 변화를 추구하는 촉매제의 역할, 그리고 다양한 이해관계와 파트너십으로 사업을 하는 파트너의 역할로 구분할 수 있다.
자유주의와 급진주의는 서로 다른 시각으로 개발협력 NGO의 역할을 설명한다. 먼저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학자인 토크빌은 시민사회의 역할을 국가가 시민의 자유 침해를 막아 주는 방파제로 소개한다. 국가와 시장 사이의 균형자로서의 시민사회 역할을 강조하는 자유주의적 입장은 정부와 공여자들에게 가장 널리 받아들여지며, 민주적 가치가 내세워지는 장소로서 규범적 관점에서 '좋은 것'으로 간주된다.
한편 급진적 시각에서는 사회는 헤게모니를 위한 권력 투쟁의 장이라는 시각을 바탕으로 시민사회는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본다. 시민사회는 정치적이며, 시민사회와 국가 간의 불분한 경계에 기반한 협상과 갈등이 그 존재의 기본적인 성격으로 설명된다. 시민사회라는 영역은 민주적 가치가 양성되는 곳이 아닌 국가에 대한 독립적 저항의 지점이라는 시각을 가진다. 따라서 사회에서 정의되는 시민의 개념에 따라 계급과 젠더의 제약이 발생하며, 국가와 시민사회간의 긴장, 그리고 시민사회 자체 내에 존재하는 긴장을 설명한다.
개발 이론에 따라 NGO의 성격과 역할을 다르게 이해하기도 한다. 개발 이론에서 NGO의 역할에 대한 언급이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이다. 1993년에 발표된 브렛의 제도주의 이론은 구조적 관계의 향상과 경제적 인센티브만이 개발을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 된다고 주장했는데, NGO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있어서 정부나 기업에 비해 비교우위를 가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2004년에 발표된 삭스의 신자유주의 이론은 세계화가 개발도상국의 경제 개발의 핵심적인 열쇠이며 이를 위해 NGO는 민주화의 유연한 중재자이자 비용 대비 효과성 있는 민간 서비스 공급자로 설명한다. 한편 풀뿌리 시각, 젠더 평등, 역량 강화 등의 지속가능하고 형평성 있는 개발을 위해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강조했던 클락의 1991년 개발이론에서도 NGO에 대한 언급이 있는데, NGO가 빈민층과 가깝다는 점에서 그리고 상의하달식 주류의 정통 개발론에 도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점에서 핵심적 행위자로 설정하였다.
하지만 NGO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만 있는 것은 아니었는데, 1995년에 발표된 에스코바의 탈개발 이론에서는 개발이라는 개념 자체가 서구에서 비롯된 것임을 지적하면서 NGO는 지역의 문화와 경제를 파괴한 근대화의 중재자라는 비판적인 시각을 제시한다.
NGO 발전의 4세대론을 통해서 NGO의 역할을 이해할 수도 있다. 1세대 NGO는 즉각적인 서비스를 위해 개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필요한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2세대로 발전하면 프로젝트 관리를 통해 소규모 지역을 대상으로 지역적 무기력을 극복하기 위한 사업을 진행한다. 그리고 3세대로 나아가면 지속가능한 시스템과 정책 개선을 위해 장기간 지역과 국가단위로 촉매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마지막 4세대에 이르면 모든 인류를 위한 네트워크 형성을 위한 무한히 장기적인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한편 한국의 NGO는 1세대에서 3세대를 아우르는 형태로 구성되어 있다.
한재광 대표는 개발협력에서의 시민사회를 이해하기 위한 이론을 설명함에 이어 주요 개발협력 정책 이슈와 시민사회와의 연결된 지점과 활동가로서 성찰해야 할 토픽을 일곱 가지로 정리하여 제시했다.
(1) 굿거버넌스
1990년대에 등장한 '굿거번너스' 정책 어젠다는 시민사회에 관한 사고방식을 개발 정책의 주류로 가져왔다. 시민사회는 시민적 책임과 공공선의 원천이자 조직화된 시민들이 공공재에 기여할 수 있는 장소이다. 강력한 시민사회는 효율적인 정부를 수립하도록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제 하에 시장경제, 정부, 시민사회 간에 선순환구조를 가정한다. 굿거버넌스는 정부와 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을 강조하고, 정부의 기능적 수행자로서의 시민사회를 제안한다.
(2) 신자유주의
1980년대 신자유주의 등장 이후 서구 공여국에서 개발 NGO가 민영화의 혜택을 보았다. 정부공여 기관의 아웃소싱 파트너로 개발 NGO가 등장한 것이다. 개발협력에서의 시민사회는 정부의 통치성(governmentality)에 있어 ‘파트너십’이라는 명분하에서 정부 정책의 좋은 이행자로 자리매김했다.
(3) 안보
9/11 이후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후 국가의 정책과 개발 NGO 지원이 연계되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후 재건 과정에서의 국가 안보 정책과 개발협력 정책의 연계 및 개발 NGO 재건 활동 연계 가능성이 있다.
(4) 원조 효과성 정책 담론
2005년 원조 효과성을 위한 파리 선언 이후 공여국 원조 정책과 개발 NGO 지원 정책 간 연계(alignment), 원조 공여 기관과의 조화(harmonization) 추진 및 적용 완화와 유지 공존이 강조되었다. 원조 효과성 적용을 위한 다양한 조치들 및 이에 대한 CSO 본연의 ‘변혁적 기능’에 관심을 잃게 한다는 우려가 있다.
(5) 개발도상국의 시민사회 활성화 지원
1950년 말부터 북반구 시민사회의 역할이 근대화론적 접근에 대한 성찰의 결과로 직접 수행자에서 개발도상국 현지 시민사회에 대한 지원자로 전환되었다. 개발도상국 시민사회에 대한 지원에 있어 궁극적으로 활성화하고 싶은 시민사회는 ‘어떤’ 시민사회인지에 대한 비판적 관점이 존재한다.
(6) 포퓰리즘/권위주의 시대의 재등장
공여국 내 포퓰리즘 운동과 정당 부상은 개발 CSO에 중요한 도전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공여국 개발 CSO를 통한 또는 현지 CSO의 직접 지원과 관련해 개발도상국 ‘시민사회 영역 축소’는 여러 행정적 제약 사항들이 추가 및 강화되어 CSO 활동에 부담으로 등장하고 있다.
(7)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의 두 가지 유형
정부와 시민사회가 맺는 관계는 시민사회를 서비스 제공자로 인식하는 앵글로색슨형과 CSO의 서비스 제공 역할뿐만 아니라 감시 기능도 강조하는 스칸디나비아형이 있다. 이 두 가지의 관계 맺기 형식은 고정된 것이 아니며, 한 국가에서 유형 변화가 나타날 수 있다.
3. 대안자로서의 개발협력 시민사회
우선 ‘스몰 d (development)’와 ‘빅 D (Development)’의 개발 과정을 구분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스몰 d’는 보편화된 사회적 과정으로서의 개발을 의미하며, 지식의 구축, 기술변화, 부의 축적 등 인류의 향상이라는 철학적 측면에서 해석된다. ‘빅 D’는 정치적 개입으로서 개발 자본주의와 산업기술의 등장과 함께 야기된 사회적 대변혁을 관리하기 위한 정부정책, 산업화 자체와 산업화로 인해 혼란스러운 사회적 난맥상의 관리로 해석된다. 혹은 기술변화와 계급형성에 따른 혼란상태를 바로 잡기 위한 사회적 개입이거나 사회적 변혁을 경험한 시민들을 관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즉 ‘빅 D’는 사회변화의 부정적 영향에 대한 개선 혹은 ‘돌봄(care)’로서의 개발을 의미한다.
개발NGO는 사업 기획, 소액 대출, 서비스 제공 등 대안적 방법을 통해 ‘빅 D’와 ‘개입’의 대안자로서 활동을 해 왔다. 이는 대안에 대한 개량주의적 개념으로, 원조 산업 체계 내에서 NGO의 위치는 대안이 구성되는 방식에 영향을 미쳐왔다. 하지만 개발 NGO들이 시스템적 변화보다 쉽게 개입의 대안적 형식을 채택해 온 것에 대한 실망하는 목소리도 존재한다. 이러한 비판적인 시각은 ‘스몰 d’의 측면에서 한 사회 내에서 경제, 정치, 사회적 관계를 조직하는 대안적 방법들을 강조하는데, 부분적이고 개량적인 특정한 개입보다는 급진적이고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한다.
4. 대안자로서의 한국 개발협력 시민사회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는 한국 전쟁 당시 선교 단체를 중심으로 유입되었다. 그리고 이를 계승한 사회복지 단체는 국제 사업의 연장자로서 정부와 파트너십을 맺어 위탁 사업 수행 형태로 서비스를 제공해 왔으며, 보수적 성향의 개신교 NGO가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정부와 시민사회의 파트너십의 형태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 것은 1995년의 KOICA와의 파트너십을 시작으로 한다. 2017년에는 OECD DAC 동료심사 결과보고서의 ‘규범적 틀’ 작성 권고를 계기로 2018년 정부·시민사회 공동 작업 후 2019년 국제개발협력위원회에서 ‘국제개발협력 분야 정부-시민사회 파트너십 기본 정책’을 채택한다. 이후 최근 2021년에 들어서는 31개 이행 과제 채택 및 정부-시민사회 공동으로 모니터링 추진이 이뤄지고 있으며, 정부와 시민사회 관계 정립의 제도화가 OECD DAC에 의해 결정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시민사회 관계가 ‘파트너십’이란 이름으로 ‘지원 제도’에만 국한될 위험이 존재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정책을 위한 시민사회의 노력이 요구된다.
한편 한국의 국제개발협력 시민사회 발전을 위한 과제로서는 사회적 측면에 대한 사업에 비해 공공행정 및 시민사회, 분쟁, 평화, 치안 등 정부의 책무성을 요구하고 제도를 개선하는 정치적 측면은 아직 부족한 모습과 같이 수행 사업에서의 분야적 편중이 두드러지는 점, 한국의 개발협력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주체 확인에 대한 필요, 노동 문제에 대한 논의 활성화 필요, 최고 리더십으로 전직 기업인, 공무원이 부임하는 현상에 대한 진단 필요의 이슈가 있음을 확인했다.
한재광 대표는 대안자로서의 한국 개발협력 시민사회의 과제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면서 이번 강의를 마무리했다.
강의 이후 이어지는 질의응답 및 토론 시간에서는 강의의 시작점에 던져진 세 가지의 질문에 대한 답변과 강의를 들으면서 갖게 된 질문들을 자유롭게 나누었다. 한국의 개발협력 시민사회가 발전하기 위해서 어떤 리더가 필요한지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고, 아직은 미흡한 국제사회의 담론에 참여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역할의 중요성이 역설되었다. 현재로서는 정부와의 연계성이 상대적으로 강하고, 개인 후원자에 대한 민감성이 높은 한국의 개발협력 시민사회의 특성을 이해하면서 이를 통해 그동안 상대적으로 짧았던 한국의 시민사회가 성숙해 가고 시민사회에 대한 인식이 개선됨에 따라 개발협력 NGO가 서비스 제공자뿐만 아니라 촉매자로서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나누었다.
지난 7월 13일부터 시작되었던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은 8월 10일의 5번째 강의로 마무리된다. 대안적 개발의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이 많은 활동가들의 기억과 마음에 남는 시간이 되었길 바란다.
글쓴이: 피움 기자단 3기
문소연(msy1333@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