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원조는 누가 책임지나요? - 원조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 3회차 강의 리뷰
지난 7월 28일, 발전대안 피다의 발전 대안 세미나 시리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의 3번째 차례로 ‘한국 비판국제개발론’ 강연이 진행되었다. 제목부터가 강렬했다.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을 비판하다니. 그러나 이 문제는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에서 꼭 다루어야 하는 사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다만, 누가 용기를 가지고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였다.
3회차 강의를 맡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김태균 교수는 ‘책무성(Accountability)’을 기반으로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한국 비판국제개발론’을 인용해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이 ‘역사성, 총체성, 책무성’을 기반으로 발전적 성찰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성은 한 나라가 발전을 해 온 역사적 맥락을 모르고서는 ODA를 기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사업을 하더라도 실패 가능성이 높고, 실패 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아 원조를 받은 수혜국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총체성은 한 가지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사업을 만들 때 해당 사업 내에서의 확장(scale-up) 가능성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범섹터적 확장(sector-wide approach) 가능성도 함께 고려하여 통합적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 총체적인 시각 없이는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개발에서 끝날 수밖에 없다. 국한된 섹터의 개발에서만 끝난다면 해당 사업이 협력국 주민들의 전체적인 삶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협력국은 원조에 종속되어 버릴 수 있다. 책무성은 누가 책임을 져야 되느냐의 문제이다. 책무성 문제가 정확히 해결되지 않으면 발전이 되기 어렵다. 발전을 위해서는 책무성이 항상 담보되어야 한다.
김태균 교수는 이 중에서도 특히 ‘책무성(Accountability)이 부재한 원조는 필요없다’고 단호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책무성을 담당하는 국제기구 및 기관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국제개발협력 생태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의 경우 책무성을 위해 세이프가드의 형태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기는 하였다. KOICA에서 월드뱅크의 것과 유사한 세이프가드를 먼저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가에 대한 리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EDCF에도 세이프가드가 있다. 통상 유상원조의 경우 무상보다 큰 규모로 인프라 건설 지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험 관리의 차원에서도 강력한 세이프가드가 붙게 된다. 하지만 EDCF의 경우에도 세이프가드를 만들었다고는 하나 아직 공개는 되지 않고 있으며, 얼마나 작동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다.
세이프가드가 실질적으로 작동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제소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된다. 원조 사업으로 인하여 피해를 봤다면 변제를 요구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전무한 것이 한국 원조의 현실이다.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의 문제가 대두하는데, 결국은 협력대상국 정부, 최악의 경우 현지 주민들이 이를 전부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사건이다. 2018년 7월 23일 발생한 이 사고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 특별절차 담당관들은 생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원상회복에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사고가 일어난 댐은 한국의 지원과 시공, 운영으로 지어져 가동되던 곳이었다(시공: SK에코플랜트, 운영: 한국 서부발전, 자금지원: EDCF). 그러나 대규모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하는 곳은 없었다. 이는 한국의 원조철학과 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전까지 책무성, 즉 누가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를 한번도 공론화하여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쉽게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관련 피움 기사: 링크)
그렇다면 우리의 원조에 왜 철학이 필요한 것인가? 대표적인 이유로 정치권력의 변동에 둔감한 자율성 확보를 위함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원조 정책은 5년 단위로 너무 큰 변동을 맞고 있다. 이는 원조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및 기준의 부재, 즉 원조 철학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또한 명확한 철학이 없이는 원조 분절화 현상을 방지하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의 개발협력 기조는 '국익'에 집중하고 있다. 2021년 발표된 제3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1-2026)은 △글로벌 가치 실현 △상생의 국익 창출 △협력과 연대 등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새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격에 걸맞은 ODA 정책 수립 및 이행을 약속했다. 그런데 중추국가란 무엇인지, 격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그 방향성과 철학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김태균 교수는 한국의 국익이 무엇인지 새롭게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원조 철학도 가변적으로 바뀔 것이고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개발협력 지형도 시시각각 변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태균 교수는 발전적 성찰에 기초한 국제개발을 하기 위해서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사회적 공론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금까지는 원조철학에 대한 토론이나 공론화 작업이 거의 없었는데, 앞으로 이런 사회화 과정 필요하다. 원조 철학의 다양한 유형들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유형들을 결합할 것인지 등을 어느 한 기관이 독단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조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김태균 교수는 한국을 ‘동아시아의 스칸디나비아’라고 명명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원조 방향성과 한국의 방향성이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①원조 강대국이 아닌 후발 주자 ②ODA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국제 규범을 준수하려고 노력 ③전쟁 및 식민통치 경험 ④민주화 국가 ⑤중견국(소강국) 위치 등의 공통적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북유럽은 평화, 인권, 인도주의로 기존 공여국과 차별화되었지만, 한국은 높은 유상원조 비율과 상업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다. 또한 북유럽은 책무성 기제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은 명목적 책무성 기제를 제도화하려는 추세이다. 우리나라 역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뒤를 이어 ‘평화적 인도주의’의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평화적 인도주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유상원조보다는 무상원조 확대 및 전략화, 원조에 대한 책임성, 정권의 변화와 관계 없이 지속 가능한 원조 철학을 공론화 및 정착시켜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한 시간여의 강의에 이어 참가자들과 함께 질의응답과 토론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원조 철학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 스칸디나비아식 원조 철학에서 집중적으로 먼저 배울 수 있는 점, 원조 정책과 국내 사회 발전 간의 연관 관계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목적이 전도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뚜렷한 개발 철학 정립이 필수적이다.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철학의 빈곤은 결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조 철학 정립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씨를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세계시민교육 등의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비록 단기간에 열매가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글쓴이: 피움 기자단 3기
최수은(justlikehannah@kh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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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한 원조는 누가 책임지나요? - 원조에 철학이 필요한 이유
발전 대안 세미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 3회차 강의 리뷰
지난 7월 28일, 발전대안 피다의 발전 대안 세미나 시리즈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발협력>의 3번째 차례로 ‘한국 비판국제개발론’ 강연이 진행되었다. 제목부터가 강렬했다.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을 비판하다니. 그러나 이 문제는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에서 꼭 다루어야 하는 사안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다만, 누가 용기를 가지고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낼 것인가의 문제였다.
3회차 강의를 맡은 서울대학교 국제대학원의 김태균 교수는 ‘책무성(Accountability)’을 기반으로 한국 국제개발협력이 나아가야 할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는 자신의 저서 ‘한국 비판국제개발론’을 인용해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이 ‘역사성, 총체성, 책무성’을 기반으로 발전적 성찰을 이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역사성은 한 나라가 발전을 해 온 역사적 맥락을 모르고서는 ODA를 기획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으면 사업을 하더라도 실패 가능성이 높고, 실패 후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아 원조를 받은 수혜국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는 패러독스가 발생한다. 총체성은 한 가지만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사업을 만들 때 해당 사업 내에서의 확장(scale-up) 가능성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범섹터적 확장(sector-wide approach) 가능성도 함께 고려하여 통합적으로 접근을 해야 한다. 총체적인 시각 없이는 발전을 이루지 못하고 개발에서 끝날 수밖에 없다. 국한된 섹터의 개발에서만 끝난다면 해당 사업이 협력국 주민들의 전체적인 삶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협력국은 원조에 종속되어 버릴 수 있다. 책무성은 누가 책임을 져야 되느냐의 문제이다. 책무성 문제가 정확히 해결되지 않으면 발전이 되기 어렵다. 발전을 위해서는 책무성이 항상 담보되어야 한다.
김태균 교수는 이 중에서도 특히 ‘책무성(Accountability)이 부재한 원조는 필요없다’고 단호하게 강조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책무성을 담당하는 국제기구 및 기관은 아직까지 존재하지 않는 것이 국제개발협력 생태계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한국의 경우 책무성을 위해 세이프가드의 형태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두기는 하였다. KOICA에서 월드뱅크의 것과 유사한 세이프가드를 먼저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잘 지켜지고 있는가에 대한 리뷰는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EDCF에도 세이프가드가 있다. 통상 유상원조의 경우 무상보다 큰 규모로 인프라 건설 지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위험 관리의 차원에서도 강력한 세이프가드가 붙게 된다. 하지만 EDCF의 경우에도 세이프가드를 만들었다고는 하나 아직 공개는 되지 않고 있으며, 얼마나 작동하고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실정이다.
세이프가드가 실질적으로 작동을 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제소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된다. 원조 사업으로 인하여 피해를 봤다면 변제를 요구할 수 있는 창구가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전무한 것이 한국 원조의 현실이다.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그 피해는 누가 책임질 것인지의 문제가 대두하는데, 결국은 협력대상국 정부, 최악의 경우 현지 주민들이 이를 전부 끌어안게 되는 것이다.
그 대표적 사례가 라오스 세피안-세남노이 댐 붕괴 사건이다. 2018년 7월 23일 발생한 이 사고에 대해 유엔인권이사회 특별절차 담당관들은 생존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원상회복에 진척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했다. 사고가 일어난 댐은 한국의 지원과 시공, 운영으로 지어져 가동되던 곳이었다(시공: SK에코플랜트, 운영: 한국 서부발전, 자금지원: EDCF). 그러나 대규모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보상을 하는 곳은 없었다. 이는 한국의 원조철학과 궁극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전까지 책무성, 즉 누가 책임질 것인가의 문제를 한번도 공론화하여 이야기한 적이 없기 때문에 쉽게 한국의 플레이어들은 빠질 수 있었던 것이다. (관련 피움 기사: 링크)
그렇다면 우리의 원조에 왜 철학이 필요한 것인가? 대표적인 이유로 정치권력의 변동에 둔감한 자율성 확보를 위함이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원조 정책은 5년 단위로 너무 큰 변동을 맞고 있다. 이는 원조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 및 기준의 부재, 즉 원조 철학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이다. 또한 명확한 철학이 없이는 원조 분절화 현상을 방지하기 어렵다.
오늘날 한국의 개발협력 기조는 '국익'에 집중하고 있다. 2021년 발표된 제3차 국제개발협력 종합기본계획(2021-2026)은 △글로벌 가치 실현 △상생의 국익 창출 △협력과 연대 등을 비전으로 내세우고 있다. 새 정부는 글로벌 중추국가의 격에 걸맞은 ODA 정책 수립 및 이행을 약속했다. 그런데 중추국가란 무엇인지, 격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그 방향성과 철학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김태균 교수는 한국의 국익이 무엇인지 새롭게 정의를 내리지 않으면 원조 철학도 가변적으로 바뀔 것이고 누가 정권을 잡느냐에 따라 개발협력 지형도 시시각각 변할 것이라고 비판했다.
김태균 교수는 발전적 성찰에 기초한 국제개발을 하기 위해서 철학이 필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사회적 공론장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지금까지는 원조철학에 대한 토론이나 공론화 작업이 거의 없었는데, 앞으로 이런 사회화 과정 필요하다. 원조 철학의 다양한 유형들 중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 어떤 유형들을 결합할 것인지 등을 어느 한 기관이 독단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원조철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김태균 교수는 한국을 ‘동아시아의 스칸디나비아’라고 명명했다. 스칸디나비아의 원조 방향성과 한국의 방향성이 유사하다고 본 것이다. ①원조 강대국이 아닌 후발 주자 ②ODA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국제 규범을 준수하려고 노력 ③전쟁 및 식민통치 경험 ④민주화 국가 ⑤중견국(소강국) 위치 등의 공통적 특성을 보유하고 있다. 반면, 북유럽은 평화, 인권, 인도주의로 기존 공여국과 차별화되었지만, 한국은 높은 유상원조 비율과 상업주의적 성향을 띄고 있다. 또한 북유럽은 책무성 기제를 보유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한국은 명목적 책무성 기제를 제도화하려는 추세이다. 우리나라 역시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뒤를 이어 ‘평화적 인도주의’의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이다. 평화적 인도주의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유상원조보다는 무상원조 확대 및 전략화, 원조에 대한 책임성, 정권의 변화와 관계 없이 지속 가능한 원조 철학을 공론화 및 정착시켜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의 역할 역시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한 시간여의 강의에 이어 참가자들과 함께 질의응답과 토론을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다. 원조 철학에 대한 한국 시민들의 논의를 활성화할 수 있는 방법, 스칸디나비아식 원조 철학에서 집중적으로 먼저 배울 수 있는 점, 원조 정책과 국내 사회 발전 간의 연관 관계 등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오갔다.
목적이 전도되지 않고 흔들림 없이 나아가기 위해서는 뚜렷한 개발 철학 정립이 필수적이다.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철학의 빈곤은 결국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원조 철학 정립은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씨를 뿌리는 농부의 심정으로 세계시민교육 등의 활동을 지속해야 한다. 비록 단기간에 열매가 보이지 않더라도 말이다.
글쓴이: 피움 기자단 3기
최수은(justlikehannah@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