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2021 토크콘서트 3회차 리뷰: 인권과 모금 사이 - 빈곤 포르노의 딜레마

20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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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5일 저녁, 피다에서는 ‘활동가의 목소리로 만드는 국제개발협력 속 민주시민교육’ 프로그램 3회차인 <인권과 모금 사이: 빈곤 포르노의 딜레마> 행사가 진행되었다. 빈곤 포르노는 ‘자선 모금이나 특정 사안에 대한 지지 확보를 위해 필요한 동정심을 이끌어내고자 빈곤한 사람들의 상황을 착취하는 모든 형태의 미디어’를 뜻한다. 우리는 대중매체를 통해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고 도움이 되어 달라는 요청에 일상적으로 노출되는데, 이 요청들은 대체로 흔히 말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삶을 비춘다. 사람들의 연민을 자극해 기부에 동참하게끔 하는 일에는 꼭 비참한 이미지가 필요한 것일까. 그들의 삶을 존중하면서도 기부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하고 대안적인 방법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오프닝 발표 및 사회: 김향지 (발전대안 피다 애드보커시팀장)

토론 패널: 

  • 한그루: NGO 모금 경력 7년, 휴직 활동가
  • 블랙: NGO 모금 및 사업 경력 5년, 현직 활동가
  • 아쇼크: NGO 사업 경력 12년, 현직 활동가

빈곤 포르노의 정의와 개념의 등장 배경, 쟁점 및 극복을 위한 노력을 간략히 개괄하는 오프닝 발표에 이어, 개발협력 시민사회 모금 및 사업 실무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현직 활동가 패널들과 함께 1) 개발협력 활동가들은 빈곤 포르노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고, 2) 빈곤 포르노와 관련한 어떠한 경험들이 있는지, 3) 빈곤 포르노 방식을 쓰지 않는 대안적인 모금 방식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들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 보았다.


*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의 사용 자체에 대해서도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으나, 본 행사에서는 토론 진행의 편의를 위하여 가장 널리 알려지고 사용되는 표현으로서 '빈곤 포르노'를 그대로 사용하였습니다.



[오프닝 발표]


1. 빈곤 포르노의 개념과 배경

  • 빈곤 포르노의 개념은 1981년 덴마크의 한 원조단체 대표인 외르겐 리스너가 굶주리는 어린이들의 이미지를 모금 캠페인에 사용하는 것을 '사회적 포르노'로 규정하고 비판한 것에서 탄생
  • 2009년 영국 더 타임스 지 칼럼니스트 앨리스 마일즈가 영화 <슬럼독 밀리어네어>를 비판하는 기사에서 '빈곤 포르노(poverty porn)'라는 용어를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
  • 자선 모금이나 특정 사안에 대한 지지 확보를 위해 필요한 동정심을 이끌어내고자 빈곤한 사람들의 상황을 착취하는 모든 형태의 미디어
  • '선정적인 방식'으로 표현되며 '즉각적이고 강렬한 감정적 반응'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포르노그래피와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해석
  • 1984년 에티오피아 기근 당시 영국의 Band Aid를 비롯한 많은 자선 단체들이 빈곤 포르노적인 방식으로 큰 액수를 모금


2. 빈곤 포르노의 딜레마

  • 반대 논리: 당사자의 인권 및 존엄 침해 / 개발도상국에 대한 편견 심화・고착화 / 자극적 이미지에 대한 피로도 증가 / 빈곤에 대한 잘못된 이해 제시 / 모금 단체에 대한 편견 / 모금 담당자의 윤리적 갈등
  • 찬성 논리: 모금 수입 유지를 위한 필요악 / 어려운 현실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묘사


3. 빈곤 포르노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 시민사회: 애드보커시 (예: 국내 - KCOC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 / 해외 - Radi-Aid Rusty Radiator Awards)
  • 학계: 연구 및 제언 (빈곤 포르노적 메시지 방식을 채택하지 않은 광고의 효과성이 더 높을 가능성 시사하는 연구 등)
  • 기업: 광고 개선 (상처 치료제 광고에 등장하는 어린이의 이미지 개선)




[주제 토론 1] 빈곤 포르노가 뭐길래


김향지 | 세 분은 활동가이기 이전에, 일상에서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와 메시지들에 노출이 되는 한 개인이고 시민이시죠. 개인적 차원에서 어떤 것을 봤을 때 빈곤 포르노라고 판단을 하시게 되나요? 혹은 ‘이거 빈곤 포르노다’라는 생각까지 들지는 않아도, 기부요청이 담긴 콘텐츠를 볼 때 어떤 이미지나 메시지들에서 불편함을 느끼셨나요?

한그루 | 빈곤 포르노는 좋게 보면 나눔을 실현할 하나의 동기로 작용할 수 있겠지만, 사실상 우리 안의 ‘저 사람 불쌍하니까 도와줘야겠다’라는 생각을 불러일으켜서 빈곤과 그 시선에 노출된 사람들에 대한 잘못된 오해를 만드는 관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불쌍해서 도와주도록’ 생각이 들게 하는 이미지와 메시지들에 대해 불편함을 느꼈어요. 예를 들어보자면, ‘~죽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의 작은 도움으로 이 아이를 살릴 수 있습니다’ 등을 얘기해 볼 수 있겠네요.

블  랙 | 과한 설정이라고 느껴지는 것들인 것 같아요. 너무 자극적이거나 왜곡된 상황을 보여 주는 이미지들이 나올 때요. 예를 들면, 마을에서 마녀로 취급 받아 매를 맞는 아이가 나오거나 뼈가 앙상하게 드러난 아이, 흙탕물을 마시는 아이 등이 떠오릅니다.

아쇼크 | 무기력한 한 아이가 힘없이 있는 모습이나 아파서 우는 모습, 엄마가 아이를 안고 그냥 무기력한 표정을 하고 있는 모습이요. 이러한 모습은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인권은 무시한 채, 단순히 외부에서 지원을 받아야 살 수 있는 의존적인 사람들로 인식하게 만들어요.


김향지 | 그렇다면 이번에는 활동가의 입장에서 어떤 종류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어떤 스토리텔링을 하시면서 '이건 빈곤 포르노인데..' 라고 생각을 하셨는지, 개인적으로 불편했던 기부 요청의 경험을 나눠 주세요.

블  랙 | 충분한 영양분을 섭취하지 못해서 뼈가 드러난 아이의 이미지를 사용한 적이 있어요. 영양실조와 관련한 것이기에 왜곡되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 이미지를 보는 것이 불편했어요. 꽤 자극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물론 콘텐츠를 만들 때의 가이드라인은 있습니다. 다만 그 가이드라인의 내용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아동과 부모의 동의를 받고 촬영을 했을 때 그것으로 됐다고 볼 수 있는지, 인권의 기준에 대해 사람마다 다르게 판단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런 의문들이 잘 해결되지 않는 것 같아요.

한그루 | 짧게나마 거리모금을 했던 적이 있었는데, 빈곤 포르노적 기부요청을 했던 경험이 있습니다. 이 당시에는 이러한 후원 요청 방식이 적절치 못하다는 인지보다는, 모금 실적을 위한 콘텐츠로서 활용한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최대한 사진과 스토리 속 인물의 불쌍함과 긴급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면서 '이 순간이 바로 시민 분이 결심해주셔야 하는 때'라고 후원 요청을 했습니다. 이때 썼던 사진이나 자료들은 단체에서 나눠주는 것을 썼고, 당연히 이렇게 사용하는 자료라는 생각 외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마치 교과서처럼 말이죠.

또한 후원자 모금 관리 파트로 업무를 하기 시작하면서 앞서 거리모금 때와는 활용하는 매체와 형태의 차이일 뿐, 콘텐츠 활용 방향은 비슷했습니다. 최대한 불쌍하고 긴급한 도움이 필요해 보이는 이미지와 스토리를 온라인 후원 플랫폼 및 홈페이지 등에 게재해서 잠재적 후원자의 시선을 붙잡기 위해 노력했어요. 그리고 기획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단체에서 강요했다기보다는, 보고할 모금 실적의 수치적인 결과를 생각했을 때 빈곤포르노적 방향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향지 | 자극적이고, 후원자들의 눈길을 즉각적으로 끌 수 있는 콘텐츠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는 모금 성과가 많이 안 좋았던 걸까요?

블  랙 | 안타깝게도 어떤 이미지를 쓰느냐에 따라 모금액에서 차이가 많았어요. 저의 경험에 비추어 말씀드리자면, 자극적인 이미지를 사용했다가 그렇지 않은 이미지를 사용했을 때 모금액이 많이 줄었습니다. 매일 모금액이 변화하는 것을 보면서 후원자들이 빈곤 포르노에 대한 불편함을 체감하지 못하고 시야가 바뀌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기관 쪽에서 바꾸는 것이 쉽지는 않겠다는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그루 | 저 역시도 마찬가지예요. 정말 아쉽게도 빈곤 포르노적 방식을 취하는 방향과 가까울수록 모금 성과가 더 높았던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방식을 완전히 포기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 이런 방식을 통해 후원에 참여해 주신 후원자분들의 피드백을 받아볼 때 ‘좋은 일 하시네요’, 혹은 ‘좋은 일인데 더 많이 못 해서 죄송해요’ 등 ‘좋은 일’이라고 표현해 주셨는데, 현지 활동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바탕으로 말씀해 주신다기보다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보람이 있는 일’로만 생각하시더라고요. 참여해 주신 후원자분들께 정말 감사함을 느끼면서도 이렇게 인식하고 계시는 걸 은연 중에 확인할 때마다 참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한 마디로 우리보다 못한, 불쌍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을 굳히는 데 빈곤 포르노 콘텐츠가 한몫을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쇼크 | 제가 육아휴직을 다녀온 후 업무 개편이 되면서 모금팀 업무를 잠시 했어요. 모금을 한다고 했을 때 내부적으로도 빈곤 포르노 형태의 사진 사용에 대한 논의가 있었어요. '지금까지 우리가 쌓은 이미지는 자립, 역량 강화, 주민 조직, 주인의식 이런 이미지였고 계속 이것을 밀고 가야 한다. 그래야 타 단체와 비교해 경쟁력이 있다'고 했고, 그것이 모금과 잘 연결되었습니다. 즉, 빈곤 포르노적 모금 방식을 채택하지는 않았지만, 모금 성과가 저하되지 않았을 뿐더러 성공적이었던 거죠.

이와는 반대로, 아프리카 케냐 현장에서 활동할 때 한 단체에서 홍보하는 영상을 현지 직원에게 보여준 적이 있는데, 현지 직원이 '우리 아프리카 사람 모두가 이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반문을 들은 적이 있어요. 우리들에게 보이는 영상 자체가 아프리카 현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자극적으로 보이는 것 같았어요. 씁쓸한 현실이죠.




주제 토론 2 : 빈곤 포르노, 극복할 수 있을까 


김향지 | 빈곤 포르노가 없어질 수 있을지 얘기하기에 앞서서, 빈곤 포르노는 꼭 없어져야 하는 걸까요? 분명히 어떤 효과가 있다고 인식되고 있고, 그 효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사용할 수밖에 없는 필요악이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에 이런 방식이 지속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본래 의미에서의 포르노는 착취를 당하는 당사자가 대표하는 집단에 대해서, 그 집단에 돌아가는 어떠한 건설적인 부가가치도 만들어 주지 못하죠. 하지만 이와는 다르게 빈곤 포르노는 소비층의 만족을 위해서가 아닌, 빈곤층 당사자들에게 물질적인 가치를 원조해 주기 위한 목적으로 이뤄지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 포르노는 없어져야 하는 게 맞는 걸까요?

한그루 | 저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후원이 필요한 요소 중에 필수적으로 포함되어야 하는 ‘빈곤’에 대해 후원자분들께 노출시켜 전달해야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포르노적 방식’으로 표현해서 사실을 왜곡시킨다면, 전체적인 국제개발 활동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심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후원의 의미까지 퇴색시켜버리기 때문에 이는 분명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지의 자립과 환경 개선을 돕기 위한 후원자들의 마음을 단순히 자극적인 상품을 구매하기 위한 행위로 전락시켜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블  랙 | 없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는 확신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빈곤 포르노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도와주려는 이들이 상황의 왜곡을 권유한다고 가정하면, 저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할 것 같아요. 의도했던 아니던 그런 환경을 우리가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야 하고, 우리가 일을 통해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데 결과적으로만 좋은 것이 정말 좋은 것인가 생각해 봐야 하는 것 같아요.

아쇼크 | 돈을 벌기 위해서는 뭐라도 해야 한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굶주림을 해결해 주는 것만이 목적이 아니라, 파트너국 주민들이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그 과정 자체도 인권을 보장해야 하죠. 인권이 보장되지 않은 방법으로 모금을 하고 그것을 인권을 위해 사용한다는 것은 모순 아닐까요?


김향지 | 그렇다면 모두가 빈곤 포르노는 없어지는 게 맞다고 생각을 하는데, 없어지지 못하게 막고 있는 요인은 무엇일까요? 사실 개발협력 시민사회에서 자성의 움직임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왜 없어지지 않고 있는 걸까요? ‘돈이 되니까’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이 돈이 될 수 있는 환경은 무엇의 결과고 누구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블  랙 | 빈곤 포르노가 없어지느냐의 문제는 전적으로 기관의 책임이라고 생각했는데, 후원자분들도 많이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영양실조인 아이들은 왜 꼭 뼈가 보여야 할까, 뼈가 안 보이면 영양실조가 아닌가' 이런 고민을 참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빈곤 포르노가 아닌 이미지를 사용했을 때 결과적으로 모금 액수에 차이가 나니까 참 어렵더라구요. 특히 작은 기관 같은 경우에는 후원금이 존립의 문제가 되기도 하잖아요. 후원자들이 그런 이미지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고, 더 좋은 캠페인과 이미지에 손을 들어준다면 기관도 바뀌어 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아쇼크 |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하는데요. 빈곤 포르노가 돈이 될 수 있는 환경은 누가 만들었을까요? 후원자분들이 돈을 주니까 후원자에게 책임을 넘기는 것 같은데, 궁극적으로는 단체가 그렇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인권을 무시한 채 감정적으로 자극하면서 후원을 받는 것은 단체에요. 즉, 빈곤포르노를 만든 장본인이죠.

한그루 | 깔끔하게 ‘이것’의 책임이니까 ‘이것’만 바꾸거나 고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장 책임을 따지기 쉬운 쪽은 아마 단체일 거에요. 애초에 빈곤 포르노적 모금 방식으로 후원 참여를 요청하지 않으면 되니까요. 하지만 그런 식으로 책임을 묻게 된다면, 대부분 단체들의 운영이 어려워지고 활동을 지속하기에 어려워지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좋은 마음으로 참여해 주신 후원자분들께 책임을 더더욱 물을 수 없고요. 그럼 결국 환경적 문제로 방향을 돌릴 수밖에 없게 되는데, 인식 변화를 위한 끊임없는 노력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김향지 | 빈곤 포르노가 필요악으로 자리해 버린 이 모금생태계의 현실을 극복하여 넘어서기 위해 활동가 개인들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얘기해 봤으면 합니다. 사실 일반 시민들은 단체와 활동가를 분리해서 보지는 못해요. 그래서 활동가들이 빈곤포르노적 기부요청을 지속할 수밖에 없는 건 활동가 한 사람의 책임이 아닌데도, 빈곤 포르노에 대한 갈등과 딜레마에 가장 시달리는 당사자는 결국 활동가들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활동가들이 빈곤포르노 극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한그루 | 꽤 오랜 시간 동안 굳혀져 온 인식과 관념을 바꾸기 어려운 만큼, 우리 활동가들은 계속해서 책임감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후원 요청 방식과 후원의 의미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을 바꿔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후원 요청 방식에서 ‘빈곤 포르노적인 방식’보다 효과적이고 강력한 것이 나타날 것이라고 믿고 나아가는 것, 이것이 활동가가 할 수 있고 또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단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알아보고 운영 현황에 대해 큰 관심을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빈곤 포르노 콘텐츠만으로 모금 방식을 고집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원의 동기가 ‘불쌍함’이라는 감정이 아닌 ‘단체 활동의 참여’인 후원자들이 이전보다 더 늘고 있거든요. 빈곤 포르노적 후원 요청 방식이 완전히 없어지기는 어렵겠지만, 후원에 대한 인식 변화가 일어남에 따라 점점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블  랙 | 빈곤 포르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몇몇 기관들이 자극적인 이미지의 사용을 줄이고 일러스트나 애니메이션 등으로 바꾸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어요. 그런 변화들은 빈곤 포르노에 대한 후원자의 피로도에 대해 내부적인 공감대가 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선 방향에 대해 동료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얘기하고, 빈곤 포르노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기관의 자부심으로 표현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야 하는 것 같아요. 또한 빈곤 포르노에 관한 공동 가이드라인만 개발됐지, 그것을 사용하느냐는 각 기관의 개별 선택으로 남겨둔 것 같아요. 기관들이 가이드라인의 실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야 후원자들의 생각도 변화되고 시야도 넓어질 것이라고 생각해요.




두 가지 테마의 주제 토론에 이어, 참가 신청서와 ZOOM 실시간 채팅을 통해 전달된 청중들의 질문들에 답하며 이야기를 더 나누는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김향지 | 빈곤 포르노의 판단 기준에 대한 질문입니다. 그들이 처한 상황을 드러내는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그것을 표현하는 단어와 방식의 문제이지 않느냐라는 의견도 존재하는데요. 과연 의도/표현 방식/인식/행동의 결과 중 빈곤 포르노의 경계는 어디까지일까요?

한그루 | 의도적으로 시작했다면 당연히 빈곤 포르노가 맞고요, 의도가 선하다고 하더라도 대중의 인식으로 인해 빈곤 포르노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느 단계에서든 빈곤 포르노가 만들어질 수 있는 여지는 충분하기에, 모든 단계마다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블  랙 | 표현 방식에 대한 문제가 아닐까 싶어요. 마찬가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빈곤 포르노라고 생각하면 그 또한 당연한 거겠죠.

아쇼크 | 어려운 환경인 건 맞지만, 그것을 어떻게 보여줄지에 관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현상을 더욱 자극적으로 표현할 것인지, 혹은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고 했을 때 당사자의 인권 존중도 있고요. 가이드라인을 통한 사전 합의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향후 후원자들의 인식이 확장되면, 빈곤 포르노가 의식적으로 필터링 될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단체들은 그 사안에 대해 더 주의하고 노력하겠죠. 그런 선순환을 기대하려고 합니다.


김향지 | 실제 모금의 현실과 빈곤 포르노의 효과에 대한 질문이 있는데, 후원금 모금 경로 중 빈곤 포르노 광고를 통한 비율이 어느 정도 되는지요?

블  랙 | 대부분 캠페인 광고를 통해 모금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부라고는 말할 수 없지만, 상당수의 후원 금액이 빈곤 포르노를 이용한 TV 광고를 통해 모금됩니다.


김향지 | 현장에서 오랫동안 활동하신 분들은 빈곤 포르노로 불리는 사진들에 대해 '현장은 정말 더 한 상황이지만, 인간의 존엄성이 무너지고 있는 현장을 잘 표현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선택한 이미지’ 라고 말씀하시기도 합니다. 또한, 빈곤포르노에 대한 개념과 문제점에 대해서도 잘 인지하고는 계시지만, '말로만, 글로만 비판만 했지 너희들은 정작 무얼 했느냐' 라는 말씀을 하시는 분도 계시고요. 이런 현장 활동가분들과 협업을 해야 할 경우,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면 좋을까요?

아쇼크 | 재난 현장이나 난민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건 꽤나 중요합니다.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날 것 그대로를 보여준다는 게 아니라 그들의 인권을 보호하기 위한 가이드라인이 수반되어야 하는 것이죠. 가이드라인은 정말 중요하지만, 상대적으로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각 부서의 합의와 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향지 | 기부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건강한 후원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입니다. 포털사이트의 모금 플랫폼에서 기부처를 정해 후원을 하는 것을 고려 중이신데, 어떤 기준으로 선정하는 게 좋을지 조언을 요청하셨습니다. 또한 이런 후원 방식에 참여해 달라고 주변에 권유를 할 때, 어떻게 해야 빈곤 포르노적인 방식의 요청이 되지 않을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한그루 | 일단 감사하다는 말씀 드리고 싶고요. (웃음) 사실 후원자들이 접할 수 있는 정보는 한계가 있죠. 그렇지만 단체의 가치관이나 신념, 활동 방향을 지켜보시길 바라요. 아는 만큼 보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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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 포르노에 대한 열띤 토론이 이어지는 밤이었다. 국제개발협력뿐만 아니라 사회복지・공익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필연적으로 고민해 봤을 주제이기 때문이다. 빈곤 포르노는 지금도 존재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간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비판의 목소리들이 지속적으로 들려 왔고, 우리는 그것을 해결할 만한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시작된 국제개발협력, 우리는 그 한 사람을 진정으로 존중하며 그들과 연대하고 있었는가. 질문이 메아리치며 깊어지는 밤이었다.



* 본 기사에서는 본문의 오프닝 발표 및 토론 내용 일부가 제외되거나 축약・편집되었습니다. 행사 전체를 다시 보고 싶으신 분들은 발전대안 피다의 유튜브 채널을 방문해 주세요. (링크)



글쓴이: 피움 기자단 2기

최수은 (justlikehannah@kh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