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과 사람들빈곤을 보는 우리의 시선과 그 대안: 삶을 담은 사진 (2부)

2022-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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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곤을 보는 우리의 시선과 그 대안: 삶을 담은 사진 (2부)


발전대안 피다는 '삶이 흐르는 강 MEKONG' 전시 기간 중 전시의 취지와 전시작에 담긴 이야기들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전시 참여자들과 함께 짧은 토크를 나누는 사이드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지난 12월 첫 순서로 스타트를 끊어 주신 데 이어 마지막 다섯 번째 순서도 함께해 주신 이번 전시 기획자 임종진 작가(발전대안 피다 전문위원/공감아이 대표)님과의 대화를 소개합니다.


* 1부 읽으러 가기 ( 링크 )


김향지 |  요즘은 사진을 사용하는 것 자체가 여러 가지로 문제가 되고 특히 우리나라 내에서는 초상권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부분도 있는데요. 그런 문제 요소들을 극복하고자 사진이 아닌 다른 형태, 예를 들어서 일러스테이션이나 애니메이션을 쓴다든지, 아니면 실사라고 해도 당사자가 아닌 대역을 쓴다든지 하는 방식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대안적인 방식들을 작가님께서는 어떻게 보시나요?

 

임종진 |  다양한 시도라는 측면에서 긍정 요소들은 있다고 봐요. 그러나 근본적인 해결의 방안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림이나 일러스트, 텍스트 등 여러 매체를 사용해서 기부를 호소해 온 지는 오래 되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진을 선택한 이유가 있는 거예요. 사진이라고 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 찍는다’, ‘실제를 아주 명확하게 구현해 낸다’고 하는 인식의 틀이 있죠. 수용자들이 보기에 재난 현장의 상황에 대해서는 글이나 그림보다는 사진이 가장 명료하게 설명하잖아요. 그리고 지금은 시각 이미지가 지배하는 비주얼 세상이고, 많은 사람들이 시각 언어가 자신을 어떤 앎의 경지로 데려다 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고 있어요. 그런 시대에 다른 어떤 표현 방식보다 한 장의 사진이 ‘이것이 명확하게 사실이다’라는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기 때문에 사진을 활용하게 된 거죠.


그러다가 이런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로 잘못 활용되기에 이른 건데, 저는 사진 활용이 문제를 일으켰으니까 사진이 그에 대한 대체적인 역할을 해야 된다고 봐요. 사진이 그런 고정관념을 만들고, 한 타인의 삶을 그저 가난한 사람이라고만 인식되게 하는 데 가장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니, 사진이 대체적인 역할을 해야만 그런 문제가 극복될 수 있다는 거죠.

 


김향지 |  문제가 된 그 미디어 자체가 다르게도 쓰일 수도 있다는 것을 반드시 보여줘야만 한다는 말씀이네요.


보통 해외 원조, 개발협력 분야에서 활동하는 단체들에서 기부 요청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사진을 활용할 땐 이 콘텐츠를 접하는 일반 시민, 잠재 후원자들이 이것을 보고 연민과 동정의 감정을 갖고 ‘뭔가를 나눠야겠다’는 생각이 들 수 있게끔 하는 것이 그 의도잖아요. 지금은 그 의도를 극대화하려고 너무 지나치게 가다 보니까 그것이 빈곤 포르노라는 형태까지도 가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그런 콘텐츠들을 받아들이는 우리 모두의 태도가 부정적으로 고착화된 면이 있고요.


그렇다면 개발협력이나 해외 원조 쪽에서 일을 하고 있는 실무자들이 앞으로 이런 시각 이미지를 활용한 기부 콘텐츠를 만들 때 우리가 불러일으키기 위해 노력해야 할 정서는 무엇이어야 할까요? 연민을 자극하고자 극단적인 이미지를 쓰다 보니까 빈곤 포르노까지 가게 된 거라면, 우리는 이제 어떤 정서에 호소해야 될까요?

 

임종진 |  우선 연민이나 동정심이라고 하는 건 사실 굉장히 좋은 감정인데, 빈곤 포르노를 설명할 때 많이 쓰이다 보니까 좀 불편한 감정으로 인식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우리가 어느 한 타인의 삶을 연민이나 동정심이라는 감정만 가지고 바라보는 것이 그 사람 입장에서 온당한가 생각해 보면, 사실은 그 당사자는 좋아하지 않겠죠. 세상 모두가 나를 불쌍한 사람으로 바라본다는 걸 과연 견뎌낼 사람이 있을까요. 물론 필요에 따라서는 ‘내 상황이 현재 어려우니까 이런 모습을 보이더라도 좀 도움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죠.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본질적인 내면에 있어서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나를 가난하고 불쌍한 존재로 바라봐도 좋다고 여기지는 않을 거라고 봐요.


연민이라는 감정 자체는 기본적으로 굉장히 소중한 감정이에요. 누군가에 대한 관심이잖아요. 하지만 그 연민이나 동정심이라는 감정을 일방적으로만 계속 갖고 가는 거는 사실 내 감정의 확인일 뿐인 거죠. ‘내가’ 저 사람이 불쌍하고 가엾고 도와줘야 되겠다 싶어서 행동을 하는 건 나를 채우는 행동인 거죠. 그 상대에게 뭔가가 간다 하더라도요. 그런데 도움을 받을 당사자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이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 있어도 온전하게 귀한 한 생명의 가치로 세상이 인정해 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할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연민 의식을 갖는 걸 되게 미안해 하기도 하잖아요. 내가 내 감정만 살피는 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 연민의 감정 너머 한 인간으로서의 존중감 같은 감정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김향지 |  조금 더 실질적인 얘기인데요. 실제 현장에 나가서 현지 주민들의 사진을 찍을 때 그 사진을 찍는 사람들의 몸가짐에 대해서 예전에 잠깐 언급하셨어요. 혹시 사진을 찍는 사람이 가져야 할 구체적인 태도에 대해 설명을 해 주실 수 있을까요?

 

임종진 |  일단은 현장에 가서 사진을 찍는 사람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콘텐츠를 디자인하거나 다른 일을 하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이 한 장의 사진이 수용자로 하여금 어떤 생각을 하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기본이에요. 그리고 콘텐츠의 수용자나 제작자를 떠나서 당사자, 즉 이 사진 속의 주인공으로 나와 있는 이 사람에게 있어 이 사진이 쓰이는 방식이 옳은지 질문을 던지며 사진 셀렉트를 해야 돼요.

 

기부 요청 콘텐츠를 만드는 분들에게 제가 행하고 있는 이런 방식들도 한번 같이 모색을 해 보자는 취지로 말씀을 드리자면요. 현장에 가서는 첫 번째는 일상에 다가서는 거예요. 비극 그 자체에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그 비극마저도 일상의 한 부분으로서 접근하는 거죠. 왜냐면 그래야 그 다음을, 또 다른 걸 볼 수가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현실적으로는 시간도 없고 어렵다는 걸 이해하고 있어요. 그러나 지금의 상황은 어쨌든 개선이 필요하니까요. 이런 비극도 있지만, 이 비극 이외에도 또 다른 무언가가 있을 수 있다는 걸 전제로 그 한 사람과 그 마을 공동체의 전체적인 일상, 삶의 큰 틀을 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누군가의 사진을 찍을 때 이 사람을 어떻게 생각하고 찍느냐는 건데요. 예를 들어서 ‘내가 당신의 사진을 찍어서 당신에게 도움을 줄 거야, 그러니까 내가 하라는 대로 해’ 이렇게 들어가면 이미 이 사람을 주체적인 존재로 보지 않는 거죠. 내가 찍는 이 사진이 당신을 위해 어느 기관에서 어떻게 쓰일 거라고 설명은 하더라도 이 사람을 주체적인 존재로 바라보는 것이 너무나 중요해요.

 

이어서 세 번째로, 이 사람을 수혜적 존재로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공감이나 연대를 할 수 있는 대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게 필요해요. 이 사람의 비극적인 상황을 이미지에 포착하면서도 충분히 가능한 얘기예요.

 

제가 생각할 때 첫 번째 단계에서부터 오로지 비극이고 고통이고 아픔인 것으로 접근하니까 빈곤 포르노가 되는 거예요. 이 사람은 사람이고 너무 귀한 존재인데 단지 조금 아프고 상처가 있고 비극이 좀 있다고 얘기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인 거죠. 이게 말이나 글로는 표현이 되는데 사진으로는 어떻게 가능하냐고 물을 수 있어요. 저는 사진이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제가 전업으로 사진을 하는 사람이고 사진 기자 출신의 다큐멘터리 사진 작가이기도 하니까 많은 분들이 저를 보고 ‘사진 잘 찍는 사람’이라고 기본적으로 생각하시거든요. 작가적인, 표현적인 역량이 뛰어나서 사람들을 저렇게 편안하게 잘 찍는다고요. 그런데 제가 깨달은 건, 찍는 이가 미학적인 역량이 있어서 어떤 사람을 그렇게 찍어 주는 게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그런 거라는 거예요. 이 사람이 설령 몸이 아프고 가난하다 하더라도 사람 자체가 귀한 존재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저는 ‘내가 당신의 사진을 잘 찍으면 당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예요’라고 생각 안 해요. 그냥 ‘당신이 내 옆에 있어 줘서 고맙습니다’ 하고 찍을 뿐이거든요.

 

저는 옷도 티를 잘 안 내요. 카메라라는 어떤 문명의 상징과도 같은 걸 들고 있기 때문에, 제가 뭔갈 가진 사람으로 보여지기가 너무도 쉽거든요. 선글라스가 모자 같은 것도 아예 안 써요. 이 마을에 와 봤자 한 곳에서 1-2년 사는 것도 아니고 잠깐 스쳐갈 가능성이 더 높은 나라는 사람이 상대에게 어떻게 인지될까 되게 고민을 하는 거죠. 말이 안 통하니까 내 행동과 몸짓과 눈빛 같은 것에 있어서 더 조심을 하고, 상대에게 ‘너무 고맙다’라는 마음을 꾸준히 몸으로 드러냅니다.

 

김향지 |  사진 자체도 하나의 언어라고 말씀을 하셨었는데, 그 사진을 찍는 과정 또한 소통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임해야 되겠네요.

 

임종진 |  나와 당신이 같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가서 대하는 거죠. 저의 친구들을 만날 때의 감정처럼요.

 


김향지 |  사실 이 분야에서 모금이나 홍보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빈곤 포르노의 문제에 대해 모두 인식하고 있고 극복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이미 시민들은 기존의 자극적인 콘텐츠에 익숙해져 있고 감각이 무뎌져 있는 상황에서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되지’ 하는 어려움을 많이 느끼고 있는 것 같아요. 오늘 말씀해 주신 것처럼 상상력을 가지고 우리가 태도를 바꾸는 시도들이 모이면 받아들이는 분들까지도 정말로 변화가 일어날까요?

 

임종진 |  저는 이런 이야기를 우리들이 나눌 수 있다는 것도 변화의 시작이라고 봐요. 고민을 풀어낼 수 있는 기회를 찾지 못하면 지치게 되고 내려놓게 되는 경우를 많이 봤거든요.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시작을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덧붙이자면, 기관의 내부에서 그런 고민들을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 또 다른 기관들과 모여서 조금 더 지속적인 토론 같은 것들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어요. 보여주기식으로 한 번 해 놓고 나서 또 세월아 네월아 하는 게 아니라, 계속 그런 자리에서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시도들이 나왔으면 좋겠어요.

 

제 입장에서 보면 제가 국제개발협력 분야와 무슨 상관이 있는 사람이겠어요. 다만 저는 이미지를 생산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런 빈곤 포르노적인 이미지의 인식과 쓰임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인간에 대한 얘기를 하는데 철학적 사고의 기준 없이 사진에 담긴 비극이 있는 그대로의 사실이라고 하면서 그 현상만 가지고 사람들을 재단하게 만드는 이미지의 생산에 돈을 쓰고 있으니까 목소리를 엄청 냈죠. 신문에 칼럼 연재도 하고 책도 냈는데,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 제가 아무리 떠들어봤자 저는 여기서 이방인이고 기관의 높은 분들은 저를 몰라요. 그러니까 사실은 파장이 없죠.

 

그래서 피다가 저한테 ‘삶이 흐르는 강 MEKONG’ 전시 기획을 의뢰해 왔을 때 피하니까 굉장히 기쁘게 이걸 준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어요. 처음에는 제가 했던 사진들을 가지고 전시를 해 보자는 제안이었는데, 오히려 메콩강이라는 공간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곳을 경험한 사람들이 참여하는 쪽으로 바뀌었어요. 메콩강을 경험한 사람들, 그곳에 나가서 몇 년씩 활동을 하다 온 분들은 전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고 돌아오거든요. 비극과 고통만을 알고 갔는데 사랑을 가지고 온 분들이니까, 이 분들의 그런 마음들을 모아 보면 되겠다 싶었죠. 제목에서도 드러나듯이, 메콩강에 대한 얘기지만 결국은 삶에 대한 메시지, 이 삶이 이어져야 한다는 메시지잖아요. 이런 게 빈곤 포르노를 전복시킬 수 있는 부드럽지만 굉장히 훌륭한 전투라고 생각해요.


* 본 기사는 인터뷰 내용을 요약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내용을 보실 분들은 영상을 시청해 주세요! ( 링크 )



인터뷰 진행/정리: 김향지

발전대안 피다 애드보커시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