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대안 피다는 2019년 겨울,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국제한국학선도센터와 공동주최로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강연 시리즈(총 2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강연 내용을 담은 아래 피움 기사를 읽어보세요!
1회차: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 제1편>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 후기 - 원문 링크
2회차: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 제2편>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후기 - 원문 링크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 제1편>
노동, 인간, 삶: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 후기

▲ 제 1편 :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강수돌 교수의 모습 ©발전대안피다
‘한국 발전 경험이 최고 모델’ , ‘한국 발전 경험 전수 요청’ 등의 표현을 뉴스에서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런데 한국의 발전 모습이 정말 공유할 수 있을 만큼 발전된 훌륭한 국가의 모습일까? 성찰과 연대에 근거한 발전을 고민하는 발전대안 피다는 이러한 의문을 줄곧 한국사회에 던져왔다. 현재 한국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매년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의 수는 2천여명이 넘는 현실, 원자력과 석탄 화력 발전소 문제를 계속해서 생산해가며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발전을 해 나가고 있는 현실 또한 명백하다. 이러한 ‘발전’ 과정을 겪어냈고,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성장’에 집착하는 한국 발전 경험이 다른 국가와 공동체에 무비판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무척 우려스럽다. 한국발전경험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성찰의 걸음이 이제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에 발전대안 피다는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1]와 국제한국학선도센터[2]와 공동주최로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는 과거와 현재 한국 발전 과정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눈으로 한국의 발전경험을 돌아보고자 하는 기획이다. 이를 위해 피다는 노동자, 환경운동가, 장애인, 여성, 농민, 이주노동자, 철거민, 난민 등 한국 사회에서 언론에 크게 조명 받지 못하고 그래서 한국발전경험에서는 자랑스러운 ‘수출’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 주체들과 함께 이야기를 펼쳐보려고 한다. 기존에는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시각에서의 한국발전경험에 대한 평가를 통해 보다 냉철하고 성찰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 국제개발협력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사점도 찾고자 한다.
그 첫번째 행사로 11월 25일 서강대학교에서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을 열었다. 시리즈의 첫번째 주제로 노동을 선정한 이유는 사회운동에서 가장 크게 자리하는 것이 노동운동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발전과 노동의 관계에 있어서 모든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간이 노동하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사회 발전과정에서 노동은 어떤 의미였는지, 노동은 어떤 희생을 감내했는지, 현재 남아있는 노동주의적 발전관과 발전주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고려대 강수돌 교수를 초청하여 함께 이야기의 장을 마련했다. 강수돌 교수는 ‘마을이장’ 교수로 유명하다. 그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조천읍 신안리 지역 이장을 맡아 공동체 운동에 노동운동을 녹여왔다. 이러한 특별한 이력은 이론을 삶에서 실천하는 학자로 꼽히는 이유기도 하다.
강수돌 교수는 그간 우리가 배워온 노동은 ‘돈(자본)의 눈으로 본 노동’ 혹은 ‘돈(자본)을 위한 노동’ 이었다며, 이러한 시각을 극복하고 ‘사람의 눈으로 본 노동’ 혹은 ‘노동을 위한 노동’으로 넘어가는 공부가 시급하다는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강 교수는 지구 사람 대부분이 자본과 노동의 범주 속에서 대립하며 살고 있으며,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삶을 외치지만 자본과 공모하는 선에서 끝나버리는, 생명을 고민하고 고려하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또한 지금의 촛불 정부도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내세우며 더 많은 성장을 위한 논의만 이끌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일부 의식 있는 그룹에서 성장과 분배를 함께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분배를 고민하기 이전에 성장의 파이를 키워가는 원천인 ‘인간’ 그리고 ‘자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인간과 자연은 2시간에 이어진 강의에서 계속 언급되었던 대상들이다. 현 사회는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파괴하여 자본의 몸집을 불려주는 것으로 끝나버린다며 모두가 공범인 사회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 그는 10가지 명제로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을 설명하며 자본주의 근대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시도했다.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의 10가지 명제> - 자본주의 근대화, 자본주의 경제개발은 자연과 인간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 근대화, 경제개발, 경제발전은 (땅과 사람의 분리 외에) 사람과 노동력의 분리, 인간 노동력과 생산수단의 분리를 전제로 한다.
- 경제개발, 경제발전은 2차 대전 후 미국 트루만 대통령이 만들어낸 개념으로, 선진 자본주의가 후진 자본주의를 개발, 발전시킨다는 맥락적 의미를 지닌다.
- 진정한 개발원조, 발전지원이란, 선진 자본주의가 자신의 필요(자본 축적)에 걸맞게 후진 자본주의를 추동, 견인,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낙후 또는 절대 빈곤 상태의 사회가 자립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에 부응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 자본주의 근대화의 본질은 폭력과 분리이다.
- 폭력적 근대화는 집단 트라우마와 두려움을 남긴다.
- 집단 두려움이 건강하게 극복되지 않는 한 그것은 대를 이어 전승된다.
- 가정, 학교, 직장, 언론, 사회가 경쟁을 내면화하고 승자와 패자로 분열되는 현실을 당연시하면 할수록, 트라우마와 두려움은 사회 전반적으로 확산하고, 갈수록 깊어지고 인간성을 향한 참된 대안은 더욱 멀어지며, 성장(개발, 발전) 중독증은 깊어진다.
- 두려움, 외로움, 공허함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은 일중독, 소비중독, 게임중독, SNS중독 등 다양한 중독 과정에 쉽게 노출된다. ‘중독 사회’가 공고화하고 공멸의 시대가 다가온다.
- 공멸 아닌 공생의 대안은 경제, 발전, 성장, 개발 중독증을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원점에서 새 출발을 해야 비로소 새싹이 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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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의 명제는 근대화, 경제개발, 경제발전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경제개발과 경제발전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만든 개념으로 선진 자본주의가 후진 자본주의를 개발, 발전시킨다는 맥락적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개념을 통해 보는 자본주의 근대화와 경제개발은 자연과 인간의 분리를 전제로 하며 이는 탈영성화(despiritualization)로 연결된다. 이 세상 만물은 고립되어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서로 연결된 전체의 일부일 뿐이라는 ‘영성’의 의미가 파괴된 현실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노예제가 폐지되고 자유, 성장 등을 추구하며 생산력 증대를 통해 사회 규모와 속도면에서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산과 들, 강과 벌판 등의 자연 속에서 하나의 존재에 불과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양 사람과 자연을 지배, 통제, 파괴할 자격이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이어 네번째 명제를 통해서는 ‘개발원조와 발전지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강수돌 교수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개발원조와 발전지원은 선진 자본주의가 자본 축적이라는 스스로의 필요에 걸맞게 후진 자본주의를 추동, 견인, 지도하는 것이 아닌, 낙후 또는 절대 빈곤 상태의 사회가 ‘자립’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에 부응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원조제공자가 지구촌 사람들의 삶에 진정 어린 관심과 더불어 지구촌 가족으로서 공생하고자 돕는다면 현지의 더 나은 삶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는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 등의 구분으로 시혜적이고 식민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점에서, 그들에게 직접 자립을 위해 필요한 것을 묻고, 돕는 것이 진정한 연대라고 덧붙였다.
이어 다섯번째부터 일곱번째까지의 명제는 자본주의 근대화의 본질은 ‘폭력’과 ‘분리’라는 내용을 담았다. 공업화와 산업화가 되면서 일어나는 사람과 자연의 분리, 학교 내에서 등수 매기기에 집중해 친구가 아닌 경쟁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과 사람의 분리, 학벌과 성형, 명품 중독 등 온갖 중독 증세로 외면과 내면이 분리되는 현 사회의 현상들이 예시로 제시됐다. 강교수는 노동이 인간 고유의 본질과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 아닌 자본의 몸집 불리기에 집중하면서 이러한 분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대처가 이루어져왔으며, 이는 일제 치하, 미군정, 한국전쟁과 독재에서 민주정권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온 것이라 설명했다. 이러한 폭력적 근대화는 ‘집단 트라우마’와 ‘두려움’을 남기게 되어 집단적 생존전략을 만들어내고 강자와 승자, 체제를 동일시하는 위험성을 남긴다. 이는 ‘두려움의 세대 전승’으로 연결되며 참된 사람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경쟁만을 좇아 살며 교육, 직장, 사회 전반에서의 과잉 경쟁심으로 사람의 야생성, 자율성, 창의성이 파괴되는 자본의 일꾼으로 전락하게 된다.
강교수는 여덟번째 명제로 트라우마와 두려움의 사회화 과정을 다루며, 우리 자신이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가정과 학교, 직장, 언론, 사회 전반이 경쟁을 내면화 하고 승자와 패자로 분열되는 현실을 당연시하면 할수록 트라우마와 두려움은 뿌리깊게 사회 전반에 박히게 되고 인간성을 향한 참된 대안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지금의 사고방식을 유지한다면 개발과 발전을 위한다는 성장 중독증에서 절대 헤어 나올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 중독증은 두려움과 외로움 공허함을 남기게 되고 이러한 감정에 이미 익숙한 현대인들은 일 중독, 소비중독, 게임중독, SNS 중독 등에 쉽게 노출되어 중독 사회가 공고화되고 공멸의 시대(기후위기 등)가 다가올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공멸이 아닌 공생의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강교수는 이러한 개발과 발전, 성장에 대하여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원점에서 새 출발을 하자고 참가자들을 북돋았다. 성급한 대안을 내세우기 보다 철저한 성찰을 통해 자립과 연대로서 이 공멸의 시대를 해쳐 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 질문하고 있는 참여자의 모습 ©발전대안피다
강교수는 강연 말미에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라며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달라고 당부했다. 강연 후에도 다양한 토론이 오갔지만 가장 핵심은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 참석자는 성찰에 대한 문제제기는 필요하지만 그 발전과정의 연장선에 있는 현실이기에 성찰을 통한 원점에서의 출발은 어렵다고 본다며, 어느 정도의 타협과 현실 직시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전하며 의견을 구한다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강교수도 사실 현재의 비관적인 상황을 본인이 막을 수도, 사람들이 멈추고자 노력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안다며, 이 세계는 공멸의 길로 점점 더 빠르게 가겠지만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렇게라도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 답변을 했다.
어두운 현실이지만 ‘이렇게라도 발버둥을 쳐야 한다’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 ‘우리의 활동 분야인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어떤 발버둥을 쳐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현재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이 자본주의 이윤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의 패권실현을 위해 새로운 식민지화를 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계속 해가는 것이 발버둥의 시작이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자본이 아닌 사회의 이로운 방향을 위하여, 우리 힘껏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발버둥을 고민해보길 바래본다.
기사 입력 일자 : 2019-12-12
작성 : 이재원 발전대안 피다 애드보커시팀장 / tony5jw@gmail.com
[1]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 국내 최초로 설립된 전공으로 '세계에 대한 지식을 한국으로 가져오고, 한국에 대한 지식을 세계로 가지고 나가자!' 라는 모토로 한국의 발전경험이나 문화 등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연구하며 새로운 한국학의 범주를 만들어가는 학과이다. (http://gks.sogang.ac.kr/korean/)
[2] 국제한국학선도센터는 한국과 세계 사이의 지식과 정보의 교환을 활성화하고 필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교내 연구센터이다. (http://gks.sogang.ac.kr/korean/7_Sogang_Global_Korean_Initiative.php)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 제2편>
: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후기

▲ 제2편 :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조현철 신부의 모습 ©발전대안피다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 멸종 저항!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강력한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며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대다수의 삶은 매우 ‘무사’하고 ‘태평’해 보인다. 거대한 환경재난의 쓰나미가 저 멀리서 밀려오고 있음에도 그것이 아직 우리의 영토에 직접적으로 다다르지 않았기에,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 보면서도 우리가 소유한 것과 손에 잡은 일을 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우리의 환경적 책무, 특히 한국의 급속한 ‘발전’ 과정 속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만들어냈을 많은 종류의 ‘쓰레기’에 대한 성찰 없이는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무의미할 수 있다. 우리의 발전을 돌아보고 성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의 발전을 기획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발전대안 피다는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1]와 국제한국학선도센터[2]와 공동주최로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강연 시리즈를 열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의 발전경험을 경제성장이나 소비주의의 눈, 즉 ‘돈’의 시각이 아닌 ‘사람’의 시각으로 성찰해보고자 하는 기획으로, 그동안 한국의 발전 속에서 잊혀지거나, 소외되거나, 고려되지 않은 눈으로 한국 발전경험을 되돌아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현철 신부의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강연은 ‘돈이 꽃피는 발전’의 시각이 아닌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시각을 통해 한국의 발전경험 속에서 환경의 의미와 위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조현철 신부는 현재 녹색연합 상임대표와 비정규노동자의집 (사)꿀잠 이사장으로 활동하면서 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사람들 사이에서 '길 위의 성직자'로 불리는 조 신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성직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한다. '세상에 들어가 소외당한 자들을 만나 사랑을 전하는 삶' 이라는 단순하지만 어려운 삶의 지침을 가지고 다양한 사회 활동을 해왔다. 특히, 쌍용 자동차/기륭 전자 해고 노동자 복직을 위한 활동과 더불어 원자력 발전소 반대 운동을 하며 경남 고리부터 서울까지 이어진 탈핵 도보 행진과 쌍용차 해고 노동자 복직을 요구하는 3보 1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미사 집전과 비정규직 법과 제도 철폐를 위한 오체투지에도 참여했다. |
강연을 시작하며 조현철 신부는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시각’에서 한국 발전경험을 평가한다면 그 결과는 명백히 낙제점(Fail)이라며, 이를 쓰레기로 인한 생태문제, 지속불가능성과 소비주의, 불의 라는 세 가지 이유를 통해 설명했다. 첫번째는 ‘쓰레기’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 이후에는 어떤 형태든 ‘쓰레기’가 뒤따른다. 우리가 무언가를 먹을 때 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고, 전기를 사용할 때도 화석연료나 핵연료의 찌꺼기나 남고, 자동차를 이용할 때도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쓰레기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지구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것이다. 분해되는데 500년이 걸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년 70억 인구의 몸무게만큼 나오고 있고, 고작 몇 년을 사용한 핵연료봉은 무려 십 만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조현철 신부는 인류가 존재한 시간은 길게 잡아봐야 만년인데, 십 만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며, 그간 인류는 “말도 안되는 쓰레기를 만들어 낸 것”이라 비판했다.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 위기의 문제도 심각하다. 앞으로 12년 정도 후부터는 기후가 걷잡을 수 없이 예측을 벗어나는 기후이탈, 기후붕괴의 문제가 나타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추가로 더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지금까지 했던 방식대로 살아보겠다는 기세가 여전하다.
조현철 신부는 이러한 모든 문제가 ‘발전의 문제’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발전은 지속불가능 하다고 강조했다. 조신부는 발전을 ‘경제성장’으로 정의한다면 이 발전의 한계는 자원의 한계에 이어 폐기물의 한계로 인해 오는 것이라 설명했다. 플라스틱, 핵폐기물, 온실가스 모두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라며, 지금의 경제성장이라는 발전을 고집하는 한 발전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성장이 종교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더 이상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었다. 인간들은 인간을 위한 경제성장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한 인간이 되도록 교육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장의 부작용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은 발전을 덜해서 그렇다. 발전을 더 하면 해결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경제성장이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 힘을 가지게 되었고 당연히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는 소비주의의 문제와 필연적으로 직결된다. 경제성장을 통해 생산을 증대해놓고 소비를 증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광고는 끊임없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품들’에 대한 욕망을 부추겨 소비적 인간(homo consumus)을 재생산한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명제는 “나는 쇼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바바라 크루거, Barbara Kruger)”로 대체되었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마트가 우리의 성전이다. 마트를 거니는 것이 우리의 순례다”라는 말로 현대 소비주의를 묘사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종(Pope Francisco)은 이 시대의 소비주의는 강박적이고 집착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신부는 이러한 소비주의의 시대에 가장 큰 비극은 인간도 쓰고 버리는 지독한 소모품이 되어 버리는 것이라 했다. 돈을 들여 작업환경을 개선하면 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목숨보다 그 비용이 중요시되는 것, 계속해서 하청노동자들이 죽음을 당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환경문제가 결코 환경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으며 사회정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종(Pope Francisco)도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라며 하나의 문제로 보지 않으면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한다(찬미받으소서 139항). 환경문제와 사회정의의 문제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환경 훼손에 대한 책임과 피해가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를 적게 쓴 가난한 사람들이 환경 훼손으로 인한 피해에 가장 크게 노출되는데,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미세먼지든 폭염이든 밖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 그러하다.
조신부는 “파괴된 환경이 발전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는가”를 주제로 3가지 메시지를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1.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라: 타이타닉이 세상의 전부인 듯 생각하는 타이타닉 리얼리즘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암초를 더 이상 모른 척 해서는 안된다. 에너지 ‘전환’ 담론도 태양력이든 수력이든 대안적 방식을 사용하되, 지금의 소비수준과 성장수준을 유지하려는 생각이라면 발전이데올로기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삶의 양식과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성장 자체가 폭력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한 약자가 짓밟히는 사회는 계속해서 유지될 것이다.
◆ 2. 자연을 다르게 보라: 우리는 그동안 이 세계는 인간이 마구 가져다 쓰는 자원이 아니라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무시해왔다. 자연은 자원이 아닌 인간 생존의 근거이므로 존중, 신중, 겸손, 자제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생태적 세계관을 가지고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 3. ‘대안 발전’을 고민해라: 경제성장만이 발전이 아니다. 무조건적 성장이 아닌 절제하고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탈성장에 기초한 대안적 시각으로 경제성장이라는 발전론에 대항해야 한다. Develop의 어원은 Envelop(싸다)의 반대어로서 ‘싸여진 것을 펼친다’이다. 진정한 발전은 ‘자동사’로서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꽃피는 것, 안에 있던 가능성이 현실화 되는 것, 나무가 성장하는 것이다. 현대의 발전은 ‘타동사’로서 마구잡이로 쓸모를 끌어내는 것이다. 나무를 잘라서 땔감으로 쓰는 것이 현대의 발전이지만, 이것이 나무의 발전이라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진짜 경제는 성장이 아닌 ‘살림살이’로서, 한 가정(혹은 국가)의 구성원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희귀한 자원을 잘 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는 가정, 국가의 맥락 안에 위치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의 3가지 경고를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 조신부는 책임은 앞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지만 피해는 뒤쪽에 있는 사람들이 보게 되는 영화 <설국열차>와 같은 현실, 즉 불평등이 지배하는 세계, 결국은 모두가 파국을 맞는 결론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간은 있다며, 필요한 것은 “우리가 변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강연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암울한 전망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행동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조신부는 <오래된 미래>를 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행복하지 않으면 발전이 아니다”라는, 발전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말을 인용하며 근본적 인식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떠한 삶이 좋은 삶인지, 얼마나 가져야 행복할 것인지 등 삶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는 동안 살아야 하니까, 세계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삶을 쓰레기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며 “세상은 암울하지만 개인의 삶을 추스르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을 전했다. 더불어 “지금까지 변화는 성공을 통해서가 아닌 실패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며 조그마한 희망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현실적인 방편으로는 ‘덜 쓰는 것’ 그리고 ‘덜 쓰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대한 덜 쓰고, 꼭 써야 하면 다시 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온 쓰레기는 재활용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강연 참여자의 모습 ©발전대안피다
강연을 듣고 나서 전기나 물을 쓸 때마다 더욱 죄책감이 느껴진다. 남이 쓸 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댐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그리고 지금도 입고 있는 한국과 많은 나라 주민들의 모습도 겹쳐진다. 내가 쓰는 이 한줌의 전기와 한줌의 맑은 물이 누군가의 피로 보이기도 하고, 어느 곳의 환경을 한 줌 재로 만든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자리잡은 우리의 소비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나는 평생 옷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우리 각자가 ‘덜 쓰고’ ‘덜 쓰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본 강연은 아래 Youtube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_TgSGCFgf4 (돌깨TV)
기사 입력 일자 : 2019-12-18
작성: 강하니 발전대안 피다 사무국장 / haneekang@gmail.com
[1]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 국내 최초로 설립된 전공으로 '세계에 대한 지식을 한국으로 가져오고, 한국에 대한 지식을 세계로 가지고 나가자!' 라는 모토로 한국의 발전경험이나 문화 등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연구하며 새로운 한국학의 범주를 만들어가는 학과이다. (http://gks.sogang.ac.kr/korean/)
[2] 국제한국학선도센터는 한국과 세계 사이의 지식과 정보의 교환을 활성화하고 필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서강대학교 교내 연구센터이다. (http://gks.sogang.ac.kr/korean/7_Sogang_Global_Korean_Initiative.php)
발전대안 피다는 2019년 겨울,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국제한국학선도센터와 공동주최로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강연 시리즈(총 2회)를 개최하였습니다.
강연 내용을 담은 아래 피움 기사를 읽어보세요!
1회차: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 제1편>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 후기 - 원문 링크
2회차: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 제2편>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후기 - 원문 링크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 제1편>
노동, 인간, 삶: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 후기
▲ 제 1편 :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강수돌 교수의 모습 ©발전대안피다
‘한국 발전 경험이 최고 모델’ , ‘한국 발전 경험 전수 요청’ 등의 표현을 뉴스에서 종종 접하곤 한다. 그런데 한국의 발전 모습이 정말 공유할 수 있을 만큼 발전된 훌륭한 국가의 모습일까? 성찰과 연대에 근거한 발전을 고민하는 발전대안 피다는 이러한 의문을 줄곧 한국사회에 던져왔다. 현재 한국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발전’되었다고 볼 수 있겠지만, 매년 산업재해로 죽어가는 노동자의 수는 2천여명이 넘는 현실, 원자력과 석탄 화력 발전소 문제를 계속해서 생산해가며 환경과 생태계를 파괴하는 발전을 해 나가고 있는 현실 또한 명백하다. 이러한 ‘발전’ 과정을 겪어냈고, 여전히 진행 중인 상황에서 ‘성장’에 집착하는 한국 발전 경험이 다른 국가와 공동체에 무비판적으로 전해지는 것은 무척 우려스럽다. 한국발전경험에 대한 진정한 반성과 성찰의 걸음이 이제라도 필요하지 않을까?
이에 발전대안 피다는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1]와 국제한국학선도센터[2]와 공동주최로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를 기획하게 되었다. 이는 과거와 현재 한국 발전 과정에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이 아닌, 누구보다 열심히 살았지만 주목받지 못했던 사람들의 눈으로 한국의 발전경험을 돌아보고자 하는 기획이다. 이를 위해 피다는 노동자, 환경운동가, 장애인, 여성, 농민, 이주노동자, 철거민, 난민 등 한국 사회에서 언론에 크게 조명 받지 못하고 그래서 한국발전경험에서는 자랑스러운 ‘수출’의 대상으로 고려되지 않는 주체들과 함께 이야기를 펼쳐보려고 한다. 기존에는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시각에서의 한국발전경험에 대한 평가를 통해 보다 냉철하고 성찰적인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며, 또한 이러한 과정을 통해 한국 국제개발협력에 적용할 수 있는 다양한 시사점도 찾고자 한다.
그 첫번째 행사로 11월 25일 서강대학교에서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을 열었다. 시리즈의 첫번째 주제로 노동을 선정한 이유는 사회운동에서 가장 크게 자리하는 것이 노동운동이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 발전과 노동의 관계에 있어서 모든 발전은 필연적으로 ‘인간이 노동하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한국사회 발전과정에서 노동은 어떤 의미였는지, 노동은 어떤 희생을 감내했는지, 현재 남아있는 노동주의적 발전관과 발전주의 문제는 무엇인지 등에 대해 고려대 강수돌 교수를 초청하여 함께 이야기의 장을 마련했다. 강수돌 교수는 ‘마을이장’ 교수로 유명하다. 그는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조천읍 신안리 지역 이장을 맡아 공동체 운동에 노동운동을 녹여왔다. 이러한 특별한 이력은 이론을 삶에서 실천하는 학자로 꼽히는 이유기도 하다.
강수돌 교수는 그간 우리가 배워온 노동은 ‘돈(자본)의 눈으로 본 노동’ 혹은 ‘돈(자본)을 위한 노동’ 이었다며, 이러한 시각을 극복하고 ‘사람의 눈으로 본 노동’ 혹은 ‘노동을 위한 노동’으로 넘어가는 공부가 시급하다는 이야기로 본격적으로 강연을 시작했다. 강 교수는 지구 사람 대부분이 자본과 노동의 범주 속에서 대립하며 살고 있으며, 노동자가 인간답게 사는 삶을 외치지만 자본과 공모하는 선에서 끝나버리는, 생명을 고민하고 고려하지 못하고 끝나버리는 현실에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에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그는 또한 지금의 촛불 정부도 ‘소득주도성장’ 기조를 내세우며 더 많은 성장을 위한 논의만 이끌고 있다며 답답해 했다. 일부 의식 있는 그룹에서 성장과 분배를 함께 말하고 있기는 하지만, 분배를 고민하기 이전에 성장의 파이를 키워가는 원천인 ‘인간’ 그리고 ‘자연’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인간과 자연은 2시간에 이어진 강의에서 계속 언급되었던 대상들이다. 현 사회는 인간과 자연의 생명을 파괴하여 자본의 몸집을 불려주는 것으로 끝나버린다며 모두가 공범인 사회임을 직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현실 속에 그는 10가지 명제로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을 설명하며 자본주의 근대화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을 시도했다.
<’노동의 눈으로 본 발전’의 10가지 명제>
첫번째부터 세번째까지의 명제는 근대화, 경제개발, 경제발전을 핵심 키워드로 삼았다. 경제개발과 경제발전은 2차 세계대전 후 미국 트루먼 대통령이 만든 개념으로 선진 자본주의가 후진 자본주의를 개발, 발전시킨다는 맥락적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개념을 통해 보는 자본주의 근대화와 경제개발은 자연과 인간의 분리를 전제로 하며 이는 탈영성화(despiritualization)로 연결된다. 이 세상 만물은 고립되어 홀로 존재할 수 없고 서로 연결된 전체의 일부일 뿐이라는 ‘영성’의 의미가 파괴된 현실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 이르러 노예제가 폐지되고 자유, 성장 등을 추구하며 생산력 증대를 통해 사회 규모와 속도면에서 엄청난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산과 들, 강과 벌판 등의 자연 속에서 하나의 존재에 불과한 인간이 만물의 영장인양 사람과 자연을 지배, 통제, 파괴할 자격이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이어 네번째 명제를 통해서는 ‘개발원조와 발전지원’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생각을 전했다. 강수돌 교수에 따르면 진정한 의미의 개발원조와 발전지원은 선진 자본주의가 자본 축적이라는 스스로의 필요에 걸맞게 후진 자본주의를 추동, 견인, 지도하는 것이 아닌, 낙후 또는 절대 빈곤 상태의 사회가 ‘자립’을 위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보고 그에 부응한 도움을 주는 것이다. 원조제공자가 지구촌 사람들의 삶에 진정 어린 관심과 더불어 지구촌 가족으로서 공생하고자 돕는다면 현지의 더 나은 삶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그는 선진국, 중진국, 후진국 등의 구분으로 시혜적이고 식민주의적인 관점을 가지고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의 관점에서, 그들에게 직접 자립을 위해 필요한 것을 묻고, 돕는 것이 진정한 연대라고 덧붙였다.
이어 다섯번째부터 일곱번째까지의 명제는 자본주의 근대화의 본질은 ‘폭력’과 ‘분리’라는 내용을 담았다. 공업화와 산업화가 되면서 일어나는 사람과 자연의 분리, 학교 내에서 등수 매기기에 집중해 친구가 아닌 경쟁자가 되어야 하는 사람과 사람의 분리, 학벌과 성형, 명품 중독 등 온갖 중독 증세로 외면과 내면이 분리되는 현 사회의 현상들이 예시로 제시됐다. 강교수는 노동이 인간 고유의 본질과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 아닌 자본의 몸집 불리기에 집중하면서 이러한 분리에 저항하는 사람들에게 폭력적인 대처가 이루어져왔으며, 이는 일제 치하, 미군정, 한국전쟁과 독재에서 민주정권까지 계속해서 이어져 온 것이라 설명했다. 이러한 폭력적 근대화는 ‘집단 트라우마’와 ‘두려움’을 남기게 되어 집단적 생존전략을 만들어내고 강자와 승자, 체제를 동일시하는 위험성을 남긴다. 이는 ‘두려움의 세대 전승’으로 연결되며 참된 사람이 아닌 살아남기 위한 경쟁만을 좇아 살며 교육, 직장, 사회 전반에서의 과잉 경쟁심으로 사람의 야생성, 자율성, 창의성이 파괴되는 자본의 일꾼으로 전락하게 된다.
강교수는 여덟번째 명제로 트라우마와 두려움의 사회화 과정을 다루며, 우리 자신이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지금 이대로 가정과 학교, 직장, 언론, 사회 전반이 경쟁을 내면화 하고 승자와 패자로 분열되는 현실을 당연시하면 할수록 트라우마와 두려움은 뿌리깊게 사회 전반에 박히게 되고 인간성을 향한 참된 대안은 더욱 멀어질 수밖에 없음을 강조했다. 지금의 사고방식을 유지한다면 개발과 발전을 위한다는 성장 중독증에서 절대 헤어 나올 수 없을 거라는 것이다. 이러한 성장 중독증은 두려움과 외로움 공허함을 남기게 되고 이러한 감정에 이미 익숙한 현대인들은 일 중독, 소비중독, 게임중독, SNS 중독 등에 쉽게 노출되어 중독 사회가 공고화되고 공멸의 시대(기후위기 등)가 다가올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계속해서 공멸이 아닌 공생의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 강교수는 이러한 개발과 발전, 성장에 대하여 근원적으로 성찰하고 원점에서 새 출발을 하자고 참가자들을 북돋았다. 성급한 대안을 내세우기 보다 철저한 성찰을 통해 자립과 연대로서 이 공멸의 시대를 해쳐 나가자는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 질문하고 있는 참여자의 모습 ©발전대안피다
강교수는 강연 말미에 “오늘 행복을 내일로 미루지 말라!” 라며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달라고 당부했다. 강연 후에도 다양한 토론이 오갔지만 가장 핵심은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되어가야 한다는 이야기였다. 한 참석자는 성찰에 대한 문제제기는 필요하지만 그 발전과정의 연장선에 있는 현실이기에 성찰을 통한 원점에서의 출발은 어렵다고 본다며, 어느 정도의 타협과 현실 직시는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을 전하며 의견을 구한다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강교수도 사실 현재의 비관적인 상황을 본인이 막을 수도, 사람들이 멈추고자 노력하기도 어렵다는 것을 안다며, 이 세계는 공멸의 길로 점점 더 빠르게 가겠지만 차마 두고 볼 수가 없어서 이렇게라도 발버둥을 치고 있다고 답변을 했다.
어두운 현실이지만 ‘이렇게라도 발버둥을 쳐야 한다’는 표현이 인상 깊었다. ‘우리의 활동 분야인 국제개발협력 분야에서는 어떤 발버둥을 쳐보아야 할까?’ 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간다. 현재 한국의 국제개발협력이 자본주의 이윤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한국의 패권실현을 위해 새로운 식민지화를 하고 있지 않은지에 대한 철저한 반성과 성찰을 계속 해가는 것이 발버둥의 시작이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 들었다. 자본이 아닌 사회의 이로운 방향을 위하여, 우리 힘껏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발버둥을 고민해보길 바래본다.
기사 입력 일자 : 2019-12-12
작성 : 이재원 발전대안 피다 애드보커시팀장 / tony5jw@gmail.com
[1]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 국내 최초로 설립된 전공으로 '세계에 대한 지식을 한국으로 가져오고, 한국에 대한 지식을 세계로 가지고 나가자!' 라는 모토로 한국의 발전경험이나 문화 등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연구하며 새로운 한국학의 범주를 만들어가는 학과이다. (http://gks.sogang.ac.kr/korean/)
[2] 국제한국학선도센터는 한국과 세계 사이의 지식과 정보의 교환을 활성화하고 필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교내 연구센터이다. (http://gks.sogang.ac.kr/korean/7_Sogang_Global_Korean_Initiative.php)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시리즈 제2편>
: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후기
▲ 제2편 :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강의를 진행하고 있는 조현철 신부의 모습 ©발전대안피다
기후변화가 아닌 기후위기! 멸종 저항! 최근 국제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강력한 용어를 의도적으로 사용하며 환경문제의 심각성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우리 대다수의 삶은 매우 ‘무사’하고 ‘태평’해 보인다. 거대한 환경재난의 쓰나미가 저 멀리서 밀려오고 있음에도 그것이 아직 우리의 영토에 직접적으로 다다르지 않았기에, 그것이 다가오는 것을 생생하게 지켜 보면서도 우리가 소유한 것과 손에 잡은 일을 놓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의 우리의 환경적 책무, 특히 한국의 급속한 ‘발전’ 과정 속에서 우리 한사람 한사람이 만들어냈을 많은 종류의 ‘쓰레기’에 대한 성찰 없이는 국제개발협력에 대한 어떠한 논의도 무의미할 수 있다. 우리의 발전을 돌아보고 성찰하지 않은 상태에서 누군가의 발전을 기획하거나 강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발전대안 피다는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1]와 국제한국학선도센터[2]와 공동주최로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눈으로 본 한국발전경험> 강연 시리즈를 열고 있다. 이는 한국사회의 발전경험을 경제성장이나 소비주의의 눈, 즉 ‘돈’의 시각이 아닌 ‘사람’의 시각으로 성찰해보고자 하는 기획으로, 그동안 한국의 발전 속에서 잊혀지거나, 소외되거나, 고려되지 않은 눈으로 한국 발전경험을 되돌아보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조현철 신부의 ‘환경의 눈으로 본 발전’ 강연은 ‘돈이 꽃피는 발전’의 시각이 아닌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시각을 통해 한국의 발전경험 속에서 환경의 의미와 위치를 되돌아 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강연을 시작하며 조현철 신부는 ‘사람이 꽃피는 발전의 시각’에서 한국 발전경험을 평가한다면 그 결과는 명백히 낙제점(Fail)이라며, 이를 쓰레기로 인한 생태문제, 지속불가능성과 소비주의, 불의 라는 세 가지 이유를 통해 설명했다. 첫번째는 ‘쓰레기’이다. 인간의 모든 행위 이후에는 어떤 형태든 ‘쓰레기’가 뒤따른다. 우리가 무언가를 먹을 때 마다 플라스틱 쓰레기가 나오고, 전기를 사용할 때도 화석연료나 핵연료의 찌꺼기나 남고, 자동차를 이용할 때도 온실가스가 발생한다. 문제는 이러한 쓰레기는 아무데도 가지 않고, 지구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여간다는 것이다. 분해되는데 500년이 걸리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매년 70억 인구의 몸무게만큼 나오고 있고, 고작 몇 년을 사용한 핵연료봉은 무려 십 만년 동안 안전하게 보관해야 한다. 조현철 신부는 인류가 존재한 시간은 길게 잡아봐야 만년인데, 십 만년이라는 시간은 ‘인간의 시간’이 아니라며, 그간 인류는 “말도 안되는 쓰레기를 만들어 낸 것”이라 비판했다. 온실가스로 인한 기후 위기의 문제도 심각하다. 앞으로 12년 정도 후부터는 기후가 걷잡을 수 없이 예측을 벗어나는 기후이탈, 기후붕괴의 문제가 나타날 전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핵발전소와 화력발전소를 추가로 더 지을 계획을 세우고 있고, 많은 사람들의 생각 속에는 지금까지 했던 방식대로 살아보겠다는 기세가 여전하다.
조현철 신부는 이러한 모든 문제가 ‘발전의 문제’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발전은 지속불가능 하다고 강조했다. 조신부는 발전을 ‘경제성장’으로 정의한다면 이 발전의 한계는 자원의 한계에 이어 폐기물의 한계로 인해 오는 것이라 설명했다. 플라스틱, 핵폐기물, 온실가스 모두 지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수준이라며, 지금의 경제성장이라는 발전을 고집하는 한 발전은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문제는 경제성장이 종교가 되어 버렸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은 더 이상 인간의 행복을 위한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되었다. 인간들은 인간을 위한 경제성장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을 위한 인간이 되도록 교육받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경제성장의 부작용을 인식하면서도 “그것은 발전을 덜해서 그렇다. 발전을 더 하면 해결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이렇듯 경제성장이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로서 힘을 가지게 되었고 당연히 계속해서 해야만 하는 것, 그 자체에 대한 의문을 제기할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이는 소비주의의 문제와 필연적으로 직결된다. 경제성장을 통해 생산을 증대해놓고 소비를 증대하지 않을 수는 없다. 광고는 끊임없이 ‘없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는 상품들’에 대한 욕망을 부추겨 소비적 인간(homo consumus)을 재생산한다. 인간의 존재에 대한 명제는 “나는 쇼핑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바바라 크루거, Barbara Kruger)”로 대체되었다. 지그문트 바우만(Zygmunt Bauman)은 “마트가 우리의 성전이다. 마트를 거니는 것이 우리의 순례다”라는 말로 현대 소비주의를 묘사하기도 했다. 프란치스코 교종(Pope Francisco)은 이 시대의 소비주의는 강박적이고 집착적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조신부는 이러한 소비주의의 시대에 가장 큰 비극은 인간도 쓰고 버리는 지독한 소모품이 되어 버리는 것이라 했다. 돈을 들여 작업환경을 개선하면 됨에도 불구하고, 사람의 목숨보다 그 비용이 중요시되는 것, 계속해서 하청노동자들이 죽음을 당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지금 한국의 현실이다.
이러한 문제는 환경문제가 결코 환경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으며 사회정의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프란치스코 교종(Pope Francisco)도 “환경위기와 사회위기는 별도의 두 위기가 아니라 하나의 복합적인 위기”라며 하나의 문제로 보지 않으면 이 문제를 풀 수 없다고 강조했다고 한다(찬미받으소서 139항). 환경문제와 사회정의의 문제가 직결되어 있다는 점을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환경 훼손에 대한 책임과 피해가 완전히 거꾸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를 적게 쓴 가난한 사람들이 환경 훼손으로 인한 피해에 가장 크게 노출되는데,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도 미세먼지든 폭염이든 밖에서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은 현실이 그러하다.
조신부는 “파괴된 환경이 발전에게 무슨 이야기를 해주는가”를 주제로 3가지 메시지를 전하며 강연을 마무리했다.
◆ 1.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라: 타이타닉이 세상의 전부인 듯 생각하는 타이타닉 리얼리즘을 극복해야 한다.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암초를 더 이상 모른 척 해서는 안된다. 에너지 ‘전환’ 담론도 태양력이든 수력이든 대안적 방식을 사용하되, 지금의 소비수준과 성장수준을 유지하려는 생각이라면 발전이데올로기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 에너지 소비를 줄이고 삶의 양식과 사고를 바꾸어야 한다. 성장 자체가 폭력적인 것이기 때문에 성장의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한 약자가 짓밟히는 사회는 계속해서 유지될 것이다.
◆ 2. 자연을 다르게 보라: 우리는 그동안 이 세계는 인간이 마구 가져다 쓰는 자원이 아니라는 너무나 당연한 이치를 무시해왔다. 자연은 자원이 아닌 인간 생존의 근거이므로 존중, 신중, 겸손, 자제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 기계론적 세계관(기술관료적 패러다임)을 극복하고 생태적 세계관을 가지고 모든 것은 다른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 3. ‘대안 발전’을 고민해라: 경제성장만이 발전이 아니다. 무조건적 성장이 아닌 절제하고 성찰하는 것이 필요하다. 탈성장에 기초한 대안적 시각으로 경제성장이라는 발전론에 대항해야 한다. Develop의 어원은 Envelop(싸다)의 반대어로서 ‘싸여진 것을 펼친다’이다. 진정한 발전은 ‘자동사’로서 우리 안에 있는 것이 자연스럽게 꽃피는 것, 안에 있던 가능성이 현실화 되는 것, 나무가 성장하는 것이다. 현대의 발전은 ‘타동사’로서 마구잡이로 쓸모를 끌어내는 것이다. 나무를 잘라서 땔감으로 쓰는 것이 현대의 발전이지만, 이것이 나무의 발전이라 볼 수는 없는 것이다. 진짜 경제는 성장이 아닌 ‘살림살이’로서, 한 가정(혹은 국가)의 구성원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희귀한 자원을 잘 운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경제는 가정, 국가의 맥락 안에 위치해야 한다.
이러한 환경의 3가지 경고를 무시하면 어떻게 될까? 조신부는 책임은 앞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지만 피해는 뒤쪽에 있는 사람들이 보게 되는 영화 <설국열차>와 같은 현실, 즉 불평등이 지배하는 세계, 결국은 모두가 파국을 맞는 결론이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 말했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시간은 있다며, 필요한 것은 “우리가 변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강연을 마쳤다.
강연이 끝나고 참가자들은 암울한 전망 속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하는지, 개인이 할 수 있는 가장 시급한 행동변화가 무엇인지에 대해 질문했다. 조신부는 <오래된 미래>를 쓴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여사의 “행복하지 않으면 발전이 아니다”라는, 발전의 방향을 완전히 바꾼 말을 인용하며 근본적 인식 전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어떠한 삶이 좋은 삶인지, 얼마나 가져야 행복할 것인지 등 삶의 가치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사는 동안 살아야 하니까, 세계가 변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 삶을 쓰레기처럼 만들 필요는 없다”며 “세상은 암울하지만 개인의 삶을 추스르는 것은 중요하다”는 생각을 전했다. 더불어 “지금까지 변화는 성공을 통해서가 아닌 실패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며 조그마한 희망의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현실적인 방편으로는 ‘덜 쓰는 것’ 그리고 ‘덜 쓰는 것을 주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최대한 덜 쓰고, 꼭 써야 하면 다시 쓰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온 쓰레기는 재활용하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 강연 참여자의 모습 ©발전대안피다
강연을 듣고 나서 전기나 물을 쓸 때마다 더욱 죄책감이 느껴진다. 남이 쓸 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한 댐으로 인해 피해를 입었던, 그리고 지금도 입고 있는 한국과 많은 나라 주민들의 모습도 겹쳐진다. 내가 쓰는 이 한줌의 전기와 한줌의 맑은 물이 누군가의 피로 보이기도 하고, 어느 곳의 환경을 한 줌 재로 만든 결과로 보이기도 한다. 너무나 당연하게 자리잡은 우리의 소비를 어떻게 줄일 수 있을까? 16세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는 “나는 평생 옷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고 한다. 우리 각자가 ‘덜 쓰고’ ‘덜 쓰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본 강연은 아래 Youtube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5_TgSGCFgf4 (돌깨TV)
기사 입력 일자 : 2019-12-18
작성: 강하니 발전대안 피다 사무국장 / haneekang@gmail.com
[1] 서강대학교 글로벌한국학과 – 국내 최초로 설립된 전공으로 '세계에 대한 지식을 한국으로 가져오고, 한국에 대한 지식을 세계로 가지고 나가자!' 라는 모토로 한국의 발전경험이나 문화 등을 국제적인 시각에서 연구하며 새로운 한국학의 범주를 만들어가는 학과이다. (http://gks.sogang.ac.kr/korean/)
[2] 국제한국학선도센터는 한국과 세계 사이의 지식과 정보의 교환을 활성화하고 필요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서강대학교 교내 연구센터이다. (http://gks.sogang.ac.kr/korean/7_Sogang_Global_Korean_Initiative.php)